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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15. 2015

필름 카메라

 엄마는 옛날 사진을 꺼내 보듯 이따금씩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곤 한다. 기억 속을 한참 헤매 보아도 잘 만나지지 않는, 내가 아주 쪼그만할 때 이야기 말이다. 정작 나는 찍히는 줄도 몰랐던 사진들을 엄마는 알뜰히 모아 두나 보다. 방금 끝낸 나와의 짧은 통화도 어쩌면, 엄마한테는 중요한 한 장이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날의 해가 쉴 곳을 찾기 시작한 늦은 오후, 엄마는 내 옆에서 빨래를 개는 중이었다.

 “준아, 니 그거 기억나나? 니 요만할 때 아빠가 ‘학준아 아빠랑 밖에 놀러 가자’ 하면   쪼르르 엄마한테 와서   ‘싫어 집에서 엄마랑 놀래’ 했던 거.”

 내 흉내까지 보탠 엄마의 물음에 나는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이미 목덜미까지 올라왔고, 바깥에 해가 내 얼굴로 쉬러 오는지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방금 들려준 이야기만큼은 직접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는 것 같이 생생하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 품에 안기는 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시계를 쳐다보며 엄마의 퇴근시간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이 열리기 무섭게 엄마한테 달려가 안기면, 해지고 어둔 그때에도 나는 맘껏 뛰어놀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도 지금처럼 집을 떠나 타지에서 다녔다. 일주일에 몇 번 학교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도 그때는 행복이었는데, 나는 그 행복을 아꼈다가 엄마와의 전화통화에다 쓰곤 했다. 마치 내가 걸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늘 따뜻한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다. 그 목소리는 더 어릴 적 안겨 놀았다는 품 속같이 따뜻해서, 나는 공중전화박스 앞에 서서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다행히 엄마는 내 부끄러움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물음에 대답조차 않는 무뚝뚝한 아들을 웃어넘긴 다음 계속 빨래를 갠다. 힐끔 쳐다보니 마침 엄마는 내 옷을 개고 있었다. 어느새 아빠보다 더 큰 옷을 입는 아들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천천히 빨래를 접는다.   

 



 “아들, 이번 주에 경주 한번 내려오지? 엄마가 아들 보고 싶은데…….”

 

 통화가 끝났는데도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내 눈치를 살피며 수줍게 뱉은 엄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살갑게 굴면 괜히 덜 큰 것 같아, 나는 매번 차갑게 전화를 끊는다. 방금도 똑같이 끊고 나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제발 방금 전 순간만큼은 사진으로 남기지 말았어야 할 텐데, 아들은 마지막으로 엄마의 필름 카메라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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