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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15. 2015

아르바이트

 




 제법 선생님다워야 하므로 칠판 앞에 서서 과묵하게 분필을 고른다. 아버지뻘쯤 되시는 영어선생님 따라 나머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다 찔러 넣었다. 질문을 왈칵 쏟아 낼 것 같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부담을 나누어 가지자는 식으로, 나는 칠판에 잘 적지도 않는 교제 쪽 수를 적었다. 몇몇 눈동자들이 막 칠판을 향했을 것이다. 비로소 한숨 돌리며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다 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말썽꾸러기인 녀석이 “쌤 블로그 하죠?” 하고 묻는다. 이미 알고 있으니 발뺌할 생각 말라는, 범인을 취조할 때의 형사 말투다.

  학원에 중3 수업은 여학생만 열 명 남짓이라, 내가 대학생이라는 걸 처음부터 비밀에 부쳤다. 젊은 남자 선생님과 여학생 간에는 혹시나 하는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녀석이 블로그를 발견했다면 내가 대학생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순식간 일 테다. 속 좁은 대학생 얘기는 거기 다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학생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게 부끄럽고,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자수해야겠거니 마음먹는 건데

 

 “쌤, 쌤은 누구한테 쌤 속에 있는 얘기 잘 안 하죠?”

  

 “…………응?”

  

 “맞네. 그럴 줄 알았어요. 쌤은 딱 봐도 들어주는 스타일일 거 같아요.    쌤. 그러면 나중에 병나요. 병.”

 

 

 아침부터 내리다가 그치길 반복하더니, 학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빗줄기가 날카롭다. 말썽꾸러기 그 녀석은 내 블로그에 대해 더 이상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자기네들끼리 물기를 털어주느라 바쁘다. 그리고 나는 빨리 핸드폰을 꺼내 속을 털어낼 친구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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