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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1. 2015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제아무리 태풍이라지만 경주로 올 적엔 적잖은 고민이 들었을 테다. 이 도시의 고요함을 깨는 자신이 논에 켜진 경운기의 소음 마냥 돼 버리진 않을까 하면서. 

 

 한 풀 기죽은 비가 그렇게 창밖을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창밖의 경주만큼이나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목소리였다. 주말까지 일을 하는 엄마도, 남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누나도 아니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목소리겠지.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부엌을 가는 척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았다. 창문 앞에 뒷짐을 지고 선 자세가 조금 전 나하고 똑같다. 

 나는 반쯤 따른 물 컵을 가득 따른 것처럼 오래 들고 마셔야 했다. 그 순간 물 컵 너머 나하고 똑같아져 버린 아버지 모습이 싫어서였다. 오죽 달랐으면, 어릴 때는 그네에 앉아 아버지 욕을 실컷 하며 운 적도 많다. 초등학생 아들이 학년 대표 계주 달리기를 뛰어도 구경 오지 않았고, 매 학예회 때마다 시화를 거는 아들에게 쓸 데 없이 액자 값 든다고 타박을 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초등학생 시 같은 혼잣말을 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더니 매일 아침 나 몰래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꿀꺽, 물을 삼키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TV 채널을 크게 틀어보는데, 창문 바깥 한 풀 꺾인 비가 가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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