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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3. 2015

‘아, 잘 왔다’

 




 독산동에 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월세 그리고 집 앞을 흐르는 ‘안양천’ 때문이었다. 나는 이삿짐을 정리하자마자 안양천으로 갔다. 주변 도로와 아파트 공사 현장에 물 소리는 잡아먹혔지만, 멀리 이사 온 동네에 친구가 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친구의 얼굴은 따로 익힐 필요가 없이 나는 편하게 강변을 걸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고픈 배를 참고 잠드는 게 싫어서 오늘 새벽엔 편의점으로 냅다 뛰었다. 파라솔에 앉아 취한 택시 승객을 한참 바라보다가 컵라면 하나를 후후 불어 넣는다. 불과 며칠 전 서울 친구와 설렁탕 한 그릇씩을 먹었는데, 그때의 포만감이 괜히 그리워지는 맛이다. 처음부터 있던 테이블 위 담뱃재들은 후 불어도 날아가지 않아서, 라면 국물만 깨끗이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곳 사거리 도로 위 그저 그런 풍경으로 남겨지기가 싫었다.

 길어서 좋기도 했던, 서울의 신호등에게 미안할 만큼 횡단보돌 빨리 빠져나와 버렸다. 그리고 내리막 하나를 걸어 안양천에 다다랐을 때, 이제야 겨우 조금 새벽 같다. 강 건너 반대편에 몇 명이 보이지만 이쪽 산책로엔 저 앞까지,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다. 옆에만 강이 흐른다. 물결을 냈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물결을 냈다가 하는 걸 한참 들여다보니,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더 들여다보니 편의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 걸음과 똑같은 방향이다. 발이 사뿐해진다. 옆 사람과 나란히 발맞춰 가는 듯 나도 모르게 사뿐사뿐 걷게 된다. 

 나는 젖은 신발을 휙 벗어던진 직후의 발걸음인데, 그러나 강은 실수도 한 번 없이 흐른다. 절대 앞장을 서지도 않는다. 내가 맨발로 뛰어나온 아이여도 ‘괜찮타’는 대답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여기로 오자마자 나는 강을 친구라고 우겼지만, 나만 강을 아는 채 하나 의심도 들었다. 도로도, 공사도 멈춘 새벽, 서로에 대해 미리 알았고 몰랐었고 하는 게 뭐가 중요할까. 그냥 이렇게 나란히 발 맞춰 가면서 ‘아, 잘 왔다’ 나는 속으로 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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