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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9. 2015

한강을 놓친 이유

 




 창문이 거기 있는 줄도 잊은 채 한참을 타다가, 잠실철교 위를 밟는 순간, 서울 메트로가 한강을 향해 일제히 창문을 냈다. 비좁은 전동차 안 한낮의 볕을 받는 수많은 타인들이 그제야 보이고, 깔린 주단 위를 나와 그들은 함께 직진하고 있었다. 가노라 하는 예고도 없었으니, 아마 시골 뜨내기라면 방금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걸 겨우 참았지 싶다. 

 

 얽힌 듯 강물은 흘러 또 어떤 이의 매듭을 풀어주고 있을까, 바짝 붙어 서 가던 전동차 안이 궁금해졌다. 처음에 나는 모두들 값비싼 관객이 되려고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원래 값비싼 전시나 연주회 관람은 얌전해야 하므로, 한강이 나타나도 일부러 놀라지 않은 척 저러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일단 한강임을 알아차렸다 믿기엔 사람들에게 달라진 구석이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게 싫어서 계속 맞은편 자리의 무릎만 살폈고, 손바닥마다 하나씩인 전자기기들로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그나마 창밖을 내려다 본 한 사람은 마치 번지점프처럼, 한강 근처까지만 시선을 빠뜨렸다가 서둘러 자기한테로 되돌아오기 바빴다. 

 한강이 마냥 좋은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그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고개만 돌리면 창문 밖이 당신을 쉬어가도록 해 줄 텐데, 전동차 안 우리들은 잠시도 같이 휴식할 수 없나 보다. 과연 서울 사람들에게 한강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서울깍쟁이란 그 말이 나는 밉지만 자연스러웠다. 당장 내가 시골 뜨내기처럼 엉덩일 들썩거려도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눈길 한번 안 줄 것이다. 창밖에 저 한강은 대단치 않은 일을 겪는 듯 오늘도 별 말없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서울 메트로는 냈던 창문을 닫고 도로 어두운 지하에 들어서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루를 돌아, 서울 메트로가 또 한 번 나를 태우고 잠실 철교를 지난다. 한낮의 볕도 강물의 색깔도 물러난 시각, 창밖엔 강가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들만 남아 있다. 몇 걸음마다 똑같이 생긴 가로등이 꼭, 한강을 구경도 않는 우리 사는 모습처럼 느껴져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때, 옆에서는 노신사 한 분이 더디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릴 채비를 하며 전동차 출입문 쪽으로 걷는 그의 걸음걸이에도 지난 세월 동안의 무뚝뚝함이 있다. 일평생 그러지 않다가 지금 해보는 듯, 아주 어설프게, 그의 눈이 서너 번 정도 깜빡거리는 걸 발견했다. 나도 몰래 그 눈빛을 따라갔다. 서 있는 것도 서툴 꼬마 아이가 부모 품에 안겨서는, 노인의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웃고 또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노인의 눈을 따라가느라 창밖으로 한강이 끝나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게 나는 더 좋았나 보다. 그 순간 사람들에 대한 내 서운함도 동시에 한 풀 꺾여 버렸다. 노인과 같이 전동차를 탄 나머지 사람들한테도, 아이의 웃음은 아니더라도, 한강을 놓칠만한 더 큰 세상이 있었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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