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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9. 2015

사진은 빤나누나에게 받음 @imppana(instagram)





 느릿느릿 날리면서 서울의 모든 속도에게 “괜찮니” 하고 묻는다. 떨어지는 나도 이렇게 느린데, 땅 위만 왔다 갔다 하는 너흰 뭐가 그리도 바쁘니 하면서. 

 



 고철 대문처럼 무겁게 택시 뒷좌석이 열리고 가죽 부츠를 신은 발들이 밖으로 하나, 둘 나온다. 택시를 탈 때만 해도 이만큼 많은 눈이 아니었던지 저들은 차에서 내리는 것보다 호들갑을 떠느라 더 바쁘다. 뒤 차 경적소리가 그들을 때린다. 도로 위에선 어림없는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소리가 회초리 같다. 그러나 놀란 아가씨들을 향해 또 한 번 경적이 울렸을 때는 유명 외제차가 아니라 흡사 떼쟁이 사춘기 학생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몇 분 째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길이 미끄러워 버스가 늦나 걱정해 볼 뿐 핸드폰을 꺼낼 궁리는 할 수 없다. 며칠 전부터 고장 나 있는 상태라 속 편히 아예 꺼버리고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만 다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고도 없이 성북동 서점에 찾아가서 내 책을 한번 드려볼 것이다. 처음 가는 길을 대충 수첩에 그려서 나온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싶다. 

 택시도, 성질 급한 외제차도 결국 도로 위 신호등 빨간불 앞에 나란히 멈춰 서 있다.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간다. 나보다 훨씬 급한 일들이 있나 걸음들이 전부 미끄러운 눈길은 겁도 안낸다. 빠른 걸음들 사이로 눈만 느리게 바닥으로 툭 떨어져 녹았다.  

 




 그리고 월요일엔 낮부터 눈이 왔다. 나는 아르바이트 도중에 눈 내리는 창밖을 알아 버렸고, 손님한테 나가야 할 메뉴판을 들고서 걸음이 딱 멈췄다. 원 없이는 아니더라도 잠시 멈추어 감동하는 건 아마 손님도 이해해주실거야. 며칠째 핸드폰이 고장 인 나는 서울의 눈발과 똑같은 기대를 하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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