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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9. 2015

무제3

 상선을 서두르며 어부가 바다에다 하는 다짐. 던져놓은 그물 하나 없지만서도 반드시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겠노라고. 퇴근하는 밤 길을 걷는 나도 그와 비슷한 다짐을 해본다. 이따가 집에 도착해서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언제 이걸 다 생각했을까 그런 놀랄만한 글을 써야지. 














 퇴근하면서 걸었던 길을 정확히 반대로 걸으면서 출근한다. 육교와 다리 하나씩을 지나 1호선 전동차 안 귀퉁이에 숨기듯 몸을 싣는다. 신도림 환승역은 복잡해 보여도 앞사람 그림자만 잘 밟다 보면 금세 끝나고, 2호선은 수고한 내게 한강을 보여준다.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만 하는 한강이, 아무래도 오늘 공기가 무겁지 않냐 물어온다. 나는 그렇다 대답하며, 어젯밤 책상 맡에서 끄적거리다 포기해버린 글이 싫었다. 만선을 다짐해 놓고 빈 그물만 싣고 돌아온 꼴이다. 아무리 그물을 걷어도 죄다 어린놈들만 잡혀, 다음번을 위해 전부 바다에 놓아 주었다 말하면 믿을까. 그만 전철을 내리면서 나는 부끄럽지 않게 오늘을 시작할 만한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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