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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9. 2015

이사





 자취방에서 글을 쓰다 다음 글자가 생각이 안 나면 대충 매무새를 고치고 나는 공원으로 갔다. 머리는 안 감고 나왔으나 그래도 연필과 종이는 좀 유난스러워 보일까봐, 인파 속에 들어서는 손엔 대신 핸드폰 메모장이 켜져 있었다. 붙들고 있던 한 줄을 메모장에다 치고, 고갤 들어 사람들 행복한 표정들을 보면, 나는 다음 한 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계속 걸었다. 유달리 키 큰 버드나무들이 많았다. 부산시에서 트럭으로 옮겨 심은 어딘가에 있던 나무들이지만, 흙에서라면 곧이곧대로 다시 자라나 주는 어수룩함이 지금은 생각할수록 고맙다.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 온지 6개월. 부산도, 서울도 타지인건 나에게 다름이 없지만, 한 곳에서 3년을 살던 부산에서와 달리 나는 벌써 이사를 결심했다. 난생 처음 ‘콜벤’ 이란 걸 부르고 짐은 뒤 칸에, 나는 낯선 아저씨 옆 조수석에 앉았다. 살던 집이 백미러에 빨간 벽돌로만 보인다. 이사 가는구나. 큰일을 이렇게나 급하게 처리한 적이 나는 잘 없어 겁나지만, 네비게이션에 찍힌 ‘서울숲’ 글씨에 또 심장이 뛴다. 사내 걸음으로 백 보도 안 떨어진 곳에 숲이 있는 그런 집이다. 창에 햇볕은 드는지,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지, 셰어 하우스라 같이 사는 형이 나와 잘 맞는지. 모든 것은 내게 두 번째 조건이 되어 있었다. 



 도로 위 운전에만 열중인 아저씨와 나의 앞으로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가로등은 단숨에 불 켜지는 게 아니었다. 옅은 빛으로 얼마간 제 몸을 달구다가 지금쯤이다 싶을 때 흰 색, 주황 색 제대로 된 빛을 냈다. 가로등과 호흡을 맞춘 적 많은 하늘도 그때 비로소 밤으로 바뀌었다. 서울에 올라온 나는 내 빛을 내기까지 어디쯤 와 있을까. 혹시 하늘이 이제 겨우 낮이면 어떡하지. 그래도, 오늘부터 글이 너무 안 써지면 나는 무작정 서울숲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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