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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30. 2015

무제4

 




 더 많이 마시기도 했는데 뭐 어때. 서울 온 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럴 수 있어. N62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속으로 오히려 나를 기특해했다. 버스 안에선 잠시 잠이 들었다가, 다행히 집 근처에서 잘 내렸다. 버스 문이 닫히자마자 노래를 불렀나 그랬다. 걷는 폼처럼 노래 가사가 툭툭 끊겼을 것이다.   



 서울 오고 나서 회식, 동창회 때 그래도 마셨는데, 역시 늘지 않았다. 글도 늘지 않았고, 글에 대한 철학만 잔뜩 늘어나 마시는 내내 계속 떠들기만 했다. 지금은 또 혼자 노래를 부른다. 이 시간에 겨우 차들을 몰아낸 도로가 멀뚱거리면서 쳐다본다. 좀 더 신경 써서 불러보지만, 초등학생이 부는 리코더 소리처럼 한 글자 따로 한 글자 따로 나와서 새벽 공기에 섞인다. 



 그러나 모든 소리가 다 의미 있다. 다음 가사를 부르기 위해 숨을 들이키면 은행잎들이 바스락거리며 귀에 부딪친다. 가지, 가지마다 역사처럼 복잡하게 나 있는 잎들. 그래도 가로수는 잠잠하다. 내 머릿속이 저랬으면 좋겠다. 복잡한 건 이젠 어쩔 수 없으니 저렇게 잠잠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핑 돈다. 나는 노래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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