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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30. 2015

성수부동산 파라솔





 갑작스러운 비라도 파라솔은 하나뿐이니까 예닐곱 명이 평소보다 더 다닥다닥 붙어 서 있다. 파라솔 탁자 위엔 어김없이 막걸리와 소주 몇 병, 남은 안주거리들. 몇 명은 바지 뒤춤이 축축하게 비 맞지만, 계속 부어진 막걸리 때문일, 제 종이컵이 축축한 까닭도 모르게 이미 취해 버렸다. 파라솔 밑이 좁을지언정 그렇다고 오후 늦게 온 비가 미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나섰던 초등학생 아들, 딸들 죄다 비를 피하려 아빠들 옆 성수 부동산 안으로 들어가 줬기 때문이다.  


 나는 우산을 든 채 그 앞을 지나갔다. 거리를 점한 파라솔 내부의 분위기 탓일까, 나만 넓게 쓰고 있는 우산 아래가 어쩐지 휑하다. 지금처럼 성수 부동산 앞에 파라솔이 펴진 건 내가 본 날만도 열 번도 더 넘는다. 볼 때마다, 성수 부동산 주인을 포함 비슷비슷한 멤버의 예닐곱 명이 윷을 놀며 술판을 벌이는 게 전부였다. 또, 파라솔 한 개로 치는 그늘이라 해봤자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중년의 아저씨들은 나무 그늘이 한 개도 안 부러울 만큼 웃고 있었다. 그러니 날씨가 궂은 오늘마저도 저들은 저렇게나 즐거운 것이다.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왔다. 한 달 전쯤 그룹 채팅방에는 스무 명 넘게 모였다가, 실제 동창회 자리에 나를 포함한 일곱 명뿐이었다. 술을 먹고 새벽 무렵 택시에서 내려 정말 오래간만에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갔다. 다른 길도 있지만 직진만 하다 보니 나는 성수 부동산이 있는 그 길을 걷는 중이었다. 물론 파라솔과 거치대는 부동산 건물 옆에 잘 접혀져 있었다. 나는 당장 파라솔을 펴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상상을 했다. 오늘 못 온 친구 놈들까지 다 모였다. 지나는 행인마저 우리를 부러워하는 한 때가 끝나고 나니, 예닐곱 중년들이 내가 부러워 성수 부동산 앞을 도저히 잘 못 지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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