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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30. 2015

밀양2

사진은 재작년(밀양1 썼던)

 




 경주에서 밀양 가는 버스 치고는 많이 탔다. ‘시외’로만 하루 두 번, 그중에 두 번째이니 그런 건가. 서울서 어제 내려온 나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 


 “영남대입니다. 내리세요.”


 반 이상 내리는 줄에 참여할 뻔했다가, 창밖을 보고 알았다. 잠결에라도 저건 밀양이 아니다. 안심하면서 다시 나는 잠이 들었다.


 “밀양입니다. 내리세요.”


 잠도 덜 깨놓고 “네”하고 소리쳤다. 나가는데, 정말 밀양까지는 아무도 안 온 건지 아님 다 내리고 깨울 때까지 내가 잔 건지, 버스 안이 텅 비어 있다. 기사님이 바깥에서 창문으로 날 지켜본다. 빨리 내리면서도 혼 줄이 날 준비는 했다. 그런데 기사님이 준비한 건 안녕히 가시라 하는 일부러 해주시는 인사였다. 밀양에 한 명도 안 내린 날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그런 날 슴슴했을 기사님 기분에 양념을 치듯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크게 해버렸다.

 


 나무 의자 몇 줄 놓인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경주처럼 날씨가 좋다. 또 나는 고향 경주처럼 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밀양의 어디 어딜 가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밀양에 오고 싶었던 거였으니. 그래서 바로 오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1”이라고 적힌 버스는 내 예상대로 밀양의 심장부를 일자로 가로질렀다.

 재작년 여름, 그러니까 이맘때, 안 가겠다던 친구들을 졸라 여기 첨 와봤던 이유는 영화 <밀양> 때문이었다. 나 말고는 영화는 보지도 않았는데 이틀 동안 거의 영화 촬영지만 찾아다녔다. 1번 버스가 그때 그 다리 위를 건넌다. 창밖에 ‘영남루’는 밀양 사람들 고개마저 돌아가게 만든다. 나도 고개가 돌아갔지만, 나는 버스와 마주한 쪽에서 걸어오는 친구들을 보는 중이었다. 보고 싶었던 앞모습이 옆모습이 되고 뒷모습이 돼서, 영남루보다 먼저 사라졌다.  


 “여보세요? 선배.” 


 “어, 학준아 도착핸나?”


 그렇다고 내가 종일 혼자 떠돌아다닐 심산은 아니다. 피서 갔다 오늘 곧 돌아오는 선배와 연극을 볼 예정이다. 지금은 ‘밀양 연극제’ 기간. 선배는 밀양 사람이라서 자기가 끊으면 티켓이 반값이라고 기다리라 했다. 전화를 끊고 또 설렌다. 이러저러해서 못 봤던 연극을 하루에 두 편씩이나 본다니.  

 


 선배와 나는 두 번째 연극 <어머니>를 위해 줄을 섰다. 영남루 근처 야외무대엔 강나루 다운 바람이 불어왔다. 야외무대는 올해가 최초라는 사회자의 자랑과 함께 연극이 시작되었다. 배우 손숙님이 무대 위에 오르고, 범상치 않은 그녀의 분위기가 먼 자리의 나를 사로잡았다. 첫 대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소름이 딱 끼쳤다. 이삼백 명 야외 객석도 비 맞는 논처럼 조용해졌다. 보름달이 떠 있고,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저 역할이 ‘달’이라면, 배우에 따라 반달 초승달도 아름답겠지만, 꽉 찬 보름달이 바로 그녀일 것이라는. 

 


 지반이 높은 강나루에서 내려오며 선배가 말해주었다. 영화 <밀양> 때문에 잘못 알려졌는데 실제 밀양 뜻은 비밀의 햇볕이 아니라 빽빽한 햇볕이라고. 나는 듣고 “진짜요?”하고 말았다. 재작년 친구 셋에게 너희 밀양의 뜻이 비밀의 햇볕인데 아느냐고 여기쯤에서 자랑했었나 싶다. 등이 간지럽다. 못 참고 돌아 올려다본, 끝난 연극 무대에 영남루가 계속 뒷모습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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