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금강씨로부터
갑자기 귤이 먹고 싶다. 먹고 싶을 때가 있지 하고 사러 나가려다 있었나? 정말 한 번도 없었나. 나는 자취하면서 단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귤을.
설에 내려갔더니 TV 앞에 귤이 있다. 짐 내려놓고 앉자마자 하나. 차 하나도 안 막히더라 하면서 하나. 먹고 살만하냐는 질문에 대답 못하고 하나. 몇 개 까먹었는지 까먹었다.
봄이구나 하면서 꽃을 꺾지 않듯이 이제 겨울이구나 하면서 마트 귤은 구경만 해왔다. 열몇 개짜리 한 봉지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면서 나는 어색했다. 돈이 아까웠다.
차려주는 밥을 먹고 또 귤을 까먹었다. 손으로 슥 까면 다 까져서 칼을 꺼낼 필요도 없다. 껍질 안쪽엔 하얀 털이 나있어서 손이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자취방에선 한 번도 안 먹었어도 이렇게 편하고 잘 먹는데 가족이나 다를 바 없다.
…셋, 넷, 다섯,…… 숫자를 세면서 귤을 먹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자취방에 앉아서 그러는 내 모습이 솔잎 한 타래 뜯어 세고 있는 것처럼 작아 보일까 염려스러웠다.
긴 설 연휴가 끝날 무렵에도 집에 귤이 많다. 귤 박스 안을 바라보면서 “엄마 귤 또 사 왔나?” “어, 마트에 귤이 너무 맛있길래.”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귤을 사놨다. 일하면서 먹어보니까 너무 맛있는 귤이라 집에 있는 걸 알면서 또 한 봉지를 사서 퇴근한 것이다. 나는 귤을 한금 방으로 가져와 먹으면서 몇 개 먹었는지 몇 개 남았는지 안 세었다.
한금: ‘꽉’의 방언(경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