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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Mar 05. 2016

왜냐하면 우리 큰아빠는

 




 아까 생각났다면 속으로 그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그러나 지금 술이 얼큰하게 올랐기 때문에, 질문들을 하나 둘 꺼내신다.       


 “학주이 니는 요새 만나는 여자 있나?” 

 

 내 차례였다. 속에서 ‘네’ ‘아니요’가 서로 몇 번씩 튕기다가  

 

 “돈도 없는데 누가 야를 만나주노.”

 

 마치 내가 대답한 것처럼 됐다. 질문했던 큰아빠가 피식 웃으셨고, 아빠는 나대신 대답해놓고 나를 못 쳐다봤다. 일단 좋은 안줏거리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준 아빠가 나는 오히려 고마워졌다. 아니었다면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럼 취직 준비는 다 했나 하는 질문이 뒤따라왔을 테다. 나는 대꾸를 안 했지만 다행히 거실 분위기는 어떤 간을 해도 맛있는 명절이었다. 어른들, 조카들 모두.



 그러다가 종호 삼촌 얘기가 나왔다. 더 나올 안주도 없었다. 잔을 받는 순서와 마찬가지로 큰아빠가 앞서 이야기를 하셨다. 다시 다들 말수적은 경상도 어른들이 되셨고, 조카들도 막내 초등학교 6학년까지 입 꾹 다물었다. 나는 일부러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사이 해가 바뀌었다지만 채 반 년도 덜 된 일이다. 동생을 일찍 여읜 게 이번이 두 번째인데 큰아빠의 기분을 짐작해서 무엇 할까.  

 


 종호 삼촌 장례식장에서였다. 이튿날인가쯤, 안 먹는 사람도 있고 모여 앉아서 밥을 먹다가, 큰아빠께서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정말로 내 책이었다. 앉아 있다가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큰아빠를 말렸다. 큰아빠는 내가 그러든 말든 가족들한테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자랑을 하셨다. 나는 포기하고 테이블을 한 바퀴 도는 책을 지켜보았다. 귀가 빨개져서 슬픈 것도 잠깐 잊고.  

 


 책이 나오기 전부터 큰아빠를 반드시 드려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결혼해 분가한 사촌 형한테 주소를 물어 큰집에 책을 보내드렸다. 왜냐하면 우리 큰아빠는 도자기를 빚으신다. 경주에 사셔서 나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지켜봐왔다. 낮에 가면 혼자 앉아서 흙을 만지고 계신다. 내게 “학주이 왔나.” 하곤 계속하신다. 가마가 있는 작업장에서 밤까지 그러다 방으로 넘어와서 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 화장실에서 한참 물로 씻고 나온 손에선 흙고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 큰아빠다. 가끔 위트도 있지만 결국 다른 삼촌들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하시다. 그래서 당신 도자기에 대한 자랑은 오늘 같은 명절에도 안 하시는데, 동생의 장례식장에까지 조카의 책을 들고 오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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