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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un 05. 2016

Come Back Home

사진은 와서 며칠 후

 




 논의 모들이 전부 그 자리에서 막 난 듯 짧다. 물 대 놓은 논에 그림자란 없다. 한 낮에. 그럼 뭐 훌쩍이나 커서 돌아올 줄 알았냐. 그러면서 축 처진 내 어깨. 버스 의자에 기대진 못하고 톨게이트를 지난다. 


 경주는 여전—하다. 거기 별의별 공사가 진행되더라 캐도, 그림이 한낱 박물관 공사 때문에 변하겠는가. 갔다 온 사람 얘기에 하나도 겁 안 났다. 커튼 밖을 보니까 다 내가 살았던 데다. 그래 나는 경주에 살았었지, 이게 아니라, 이사를 한 열 번쯤 다니면서 살았던 집들이 저기, 저어기—. 나는 그림 속에 살았네.       


 터미널에 내려 곧장 집으로 왔다. 우리 집이다. 물론 다 우리 집이었지만, 이번엔 진짜 우리 집이다. 난 멀찌감치 서울에서 글이나 쓰고 자빠져 있었는데, 집을 샀다 하는 얘길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빠의 젊음을 바쳐 산 방앗간. 그리고 쭉 없자 우리깨 없구나 하고 살았는데. 집이 너무 부러웠던 꼬마 때 친구한테 그때 니가 진짜 부러웠다 임마 할 만큼 커버렸지만, 기쁜 일임에 당연하다.   


 “내 왔다.”  

 

 문을 열어 두었길래. 오전에 온 박스 짐들이 거실 한가득이다. 이 집에 처음인 내 짐들은, 더 이상 이사 갈 일도 없겠지만, 다짐은 여기에 계속 머물 셈이다. 나는 백팩을 내려놓았다. 욕실에서 들리는 소리가 씻는 소리만 봐도 아빠였다. 안이 덥다고 또 문을 덜 닫고 씻네. 요즘 좀 청순해지셨음에 기대를 걸어본다. 나는 열린 문 새로 딱 들어갈 만큼 작게 “내 왔다.” 아빠는 그래 하듯 “잘 왔다” 

  

 아싸 나는 잘 온 거다. 아빠만 잘 왔다 하면 그럼 된 거다. 집에 돌아온 아들을 마다하거나 혼낼 사람은 이제 없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며, 거길 나올 때의 다짐들이 떠올라 논의 모처럼 작아졌지만, 이제 나는 논의 모여도 상관없다. 아까 기분엔 그 자리에서 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제법 자란, 그렇기에 옮겨 심어진 모라는 걸. 훌쩍까진 아니더라도 얼추 제법 나도 자랐겠지. 자랐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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