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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May 24. 2016

가장 찍고 싶은 한 송이

사진은 담임이 된 민규로부터

 




 어서 피고 어서 지는 봄꽃 지고 나면 가을마냥 마음이 허전하다. 이 오월만 지나면 또 여름 그 나름대로 좋은데, 피어난 장미. 빨간 입술에 봄을 만회하려는 결심이 느껴진다. 다가가서 나그네인 척 카메라를 연다. 별로 애살스럽지 않은 나라도 그대 눈이 머무는 한 송이가 나였으면, 나였으면 하고 모두 손을 든다. 


 알고 왔지만 나만 경주였다. 들어본 적도 없는 흥해, 대도, 창포중학교. 중학교 이름치고 곱상치도 않다. 암튼 그런 중학교 출신들 사이에서 나만 경주 월성중학교였다. 반에선 이미 대충 가닥이 잡혔다. 얘는 중학교 때 어땠고 어땠을 것이고 하는 것들. 그러나 밝혀진 게 없는 나는 그 문제가 아직도 시급했다. 기숙사 들어갔으니까 공부 한 건 알 테고. 백일장 나가고, 발표 많이 하고, 근데 그건 쌤들이 시키니까. 


 곧 참관 수업이 있을 예정이다. 우리 입학과 함께 전임 온 국어 선생님이 주의사항을 알려주신다.  

 

 “딱딱하게 있지 말고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알았제? 규익아 알았제?” 

 

 선생님과 벌써 친한 규익이가 일부러 대답을 안 한다. 선생님이 더 좋아한다. 나도 빨리 친해져야지. 종이 울리자, 그래도 평소 수업과 다른 긴장감이 교실에 들어왔다. 이어서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명이 교실 뒤로 들어와 서고, 참관 수업이 시작되었다. 지금이 바로 리허설이 아님을 느끼게 선생님의 말투와 행동은 크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내 등줄기가 후끈하던 것도 이내 사라졌다.      


 “그럼 한 분단에 한 명씩만 발표해볼까?” 

 

 이번 수업을 위해 교실 책상이 잠깐 분단 형태다. 나는 5분단이어서 바로 뒤에 선생님들이 서 계셨다. 만약 한다면 잘 해야지. 앞 분단도 할 것 같은 녀석들이 발표를 한다.  

 

 “5분단은 누가, 누굴 시켜 볼까?” 

 

 우리 분단 애들이 슬쩍 슬쩍 나를 가리킨다. 규익이는 6분단이면서 “학준이요” 한다. 나는 빼지도 않고, 그렇다고 으스대지도 않는다. 그런 표정이었는데. 


 “효범이. 효범이가 일어나서.”




 




 중학교 쌤들이 발표를 시키면 나는 아홉 번은 하고, 한 번은 안 했다. 애들이 보니까. 그래서 혼나더라도 안 할 때 더 뿌듯했다.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 가서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눈에 띄어서 발표를 시킬 장미는 나일거라. 혹여 범생이처럼 굴진 말자. 거들먹거리던 나는, 그때 참관 수업 이후 서서 국어책을 읽는 것도 벌벌 떨면서 읽었다. 서울대 입학한 효범이는 잘못이 없다.


 모두 활짝 핀 장미. 한 반에 앉아 너도나도 시켜달라 손을 드는 초등학생 같아 보기 좋다. 가장 찍고 싶은 한 송이는 없었다. 애초에 나는 조금 물러나서 담벼락을 다 찍으려 했으니까―












고등학교로 간 포항은 바닷가와 연관 지은 학교이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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