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놓은 발, 불룩 휘어진 샌들, 살을 드러낸 고목의 뿌리. 나는 발바닥에 닿자마자—아 맞다!—생각나면서 고목의 다음, 다음다음 뿌리는 밟지 않았다. 밟고 만 것은 사과했다. 그야말로 훨씬 나보다 어른이겠지. 물론 그것도 맞겠지만 방금 사과하고 내려온 이유는, 마찬가지로 어른인 우리 이모 잔소리 때문이었다.
“야야, 밤에 귀신 나온다 캤제.”
나를 안 보면서 해도 나한테 하는 말. 문턱 위에 앉아서 큰방 티빌 보던 나는 안 무서웠지만 더 안 무서운 척했다. 문턱 위에서 계속 티빌 봤다. 이모는 마루를 금세 다 닦았고, 그다음 큰방인데, 그러려면 나와 바투 지나쳐 들어가거나 아니면 내가 내려와야 한다. 빨리 내려오란 뜻으로 여길 쳐다보겠지. 그럼 그때 슬 비켜야겠다. 걸레를 고이 접어 방으로 걸어오는데 우리 이모, 끝까지 나를 안 쳐다본다. 바투 지나칠 때의 표정은 ‘아까 귀신 나온단 말 거짓말인 줄 아느냐’ 그거다.
모두 누웠다. 아 이모부는 빼고. 불 다 꺼놓고 큰방에 나란히 누워서 “전설의 고향” 시청 중. 문풍지 바른 여닫이문도 숨죽인다. 달려있단 걸 어필했다간 귀신이 떼어 갈까 봐 가만히.—우리 이모 집은 내가 알기로 집을 한번 넓혔다. 일렬로 방 두 개, 부엌, 그 앞앞을 마루가 연결해주는 그대로에서 마루만 쭉 넓혔다. 지붕도 그만큼 넓어졌으며, 마루가 끝나는 둘레에는 유리문들이 마치 함처럼 감쌌다.—여름밤은 만날 늦는 게 전설의 고향 할 시간만 되면 무척 어둡다. 유리문을 안 열고도 들어와서 밤과 티브이가 몸싸움을 벌인다. 나는 둘 다 무섭다. 여닫이문 너도 무서워서 가만있는다지만, 좀 움직거려서 닫아 놓고 싶다. 유리문들 통과해서 마루까지만, 방안에는 밤이 못 들어오게 말이다.
“학주이 자나?”
마루를 감싼 한 개가 드르륵 열렸다. 나는 엉금엉금 이불을 차고 내다보고도 문턱 바깥엔 안 나갔다. 이모부가 신발을 벗으시려면 아직 남았다. 정확함, 신속함 이런 것들 다 논에 던져놓고 술을 안 드셨겠나.
“학주이 이모부하고 같이 자자. 남잔 남자끼리 자야지. 맞나 아이가?”
마루에 올라오는데 성공하셨다. 이모는 안 일어나고 표정만으로 맞긴 뭐가 맞노. 대답은 내가 해야 되는데 못하고, 그러나 논에 사시는 이모부 얼굴을 함부로 맘껏 쳐다본다. 내가 무슨 반응이거나 상관없다 하는 웃음. 그러니 고개만 뻣뻣이 쳐든 내 앞을 그냥 지나가주신다. 말 좀 더 거셔도 되는데. 큰방 앞을 지나 작은방으로 향하는 마루 밟는 소리가 쓸쓸하다.
“이모. 내 이모부랑 같이 자야 되나?”
이모랑 누나들은 신경도 안 쓰이겠지. 나만 아까부터 전설은 무슨 전설 그냥 사극 같다.
“자꾸 묻노. 니가 가고 싶으면 가그라.”
이번 전설의 고향이 함경북도 어디임이 밝혀질 즈음 결국 나는 베개를 안고 나섰다. 문턱을 잘 넘은 그다음은 마루. 이모가 낮에 싹 닦은 건 티도 안 나게 밤이다. 밤이 마루다. 나를 안 헤친다고 말하지만 그 말마저 무서워하며 다행히 옆방 문턱을 넘었다. 마침내 이모부 옆에 눕는 것까지, 윽 술 냄새. 근데 코는 전혀 안 고시네. 안 주무시는 걸까. 나는 속으로만 연거푸 물어보다가 주무시는 걸로 결론을 내렸는데,
‘야야, 밤에 귀신 나온다 캤제.’
낮엔 잔소리였던 그 말이 생각났다. 지나칠 때 이모 표정은 되려 조카를 염려하는 표정이 맞았다. 나는 내 종아리쯤 오는 이모집 문지방이 신기해서 앉기를 좋아한 것뿐인데. 귀신 나온다 캤제. 귀신 나온다 캤제. 작은방 여닫이문 두 짝도 물론 열렸고, 이모, 누나들은 없고. 나온다, 나온다……눈 뜨니까 이모부는 옆에 안 계셨다. 벌써 논에 가셨고, 나는 내 스스로 잠들었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다.
당장은 고목의 뿌리면서 뭐 어때. 문지방과 같다 치면, 내려와서도 또 얼마든지 여기가 흙 덮인 뿌리일 수 있거늘. 여하튼 나는 그날부터 살을 드러낸 고목의 뿌리마저 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 드는 생각인데, 이모부는 옆에 내가 자고 있자 아침에 좀 흐뭇하지 않으셨을까. 아주 오래 전 얘기다. 그런데 지금 가보잖아 이모집은 글쎄 아직까지 문지방이 높고, 마루는 깨끗하고, 이모부는 밤인데 또 안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