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시 <기다림>을 읽고
“다녀왔습니다.”
“우예* 같이 안 오고?”
“누구?”
“느그* 엄마. 닌 머 타고 왔노?”
“쌤 차. 엄마 왜?”
“니 태우러 간다 카디* 둘이 못 만났나? 오토바이 소리 안 나노 캤다*.”
아빠가 무슨 말하는지 단박에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티를 안 냈다. 남의 일처럼 저래* 말하는데 나만 뭐 하러. 보다시피 난 참기름 짜는 기계 옆에 서서, 그니까 이 상황이 잘못 됐다는 그 말인데. 내가 간 곳은 오늘 학교 말고 딱 한 군데다.
“정신 사납구로* 와 서가 있노?”
“엄마 언제 나갔는데? 아침에 내 태우러 온다 안 했잖아.”
“올 때 다 됐으니까 들어온나. 정신 사납다.”
아빠는 내가 서 있으면 손님이 들어오는 게 안 보이므로 정신 사납다는 말이다. 그 말이 달리 사나워지기 전에 앉아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신발 끈을 풀면서 다시금 물어볼 생각은 함부래* 접었다. 그래. 내가 아침에 똑바로 말 안 해주긴 했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언제 마칠 줄 알고.
잘 아는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내다보는 방앗간 유리문이 차츰 불빛 색깔로 노래지다가 시동이 탁 꺼진다. 노란색이 차갑다. 나는 후딱 신발을 신고 가게 밖으로 나가봤다. 내리는 엄마 얼굴에 맞으면서 온 찬 공기가 그냥 있다.
“학주이 왔네.”
낮이 밤이 됐는데 그럼.
“쌤이 태워주더라. 엄마 진짜 거기 갔다 오나?”
“다행이다. 엄만 안 드가고 운동장에 서 있었는데 못 봤나?”
“어”
“암만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희한하다 그라고 있다가 나오는 사람 붙들고 물어봤지 ‘벌써 끝났어요.’ 그라더라.”
나는 엉겁결로 우리 학교 대표가 돼서 토론대회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학교들 중 하나인 계림초등학교는 꽤 멀었다. 학교 마치고 거기 간다 말만 하고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엄마한테 안 말했다. 왜냐하면 그걸 나도 모르고 갔거든 정말로. 따라갔던 선생님이 우리 집 아니 우리 가게 부근에 사셔서 그 차를 얻어 탔다.
들어오니까 엄마 양쪽 볼이 빨갛다. 아빠는 안 보고 빨리 밥해라 한다. 가게 안인데도 별별 살림이 다 들어있어서 엄마는 오기 무섭게 싱크대 앞으로 갔다. 나는 서 있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가지 말라 하는 걸 엄만 기어코 간 거라 나는 미안할 게 하나도 없는 듯이 됐다. 엄마 스스로 역시 그렇다. 내가 무사히 와 있어서 다행인 그거 한 가지다. 왜. 엄마는 왜 나를 자꾸 기다려주는 걸까. 요즘까지도 말이다.
사투리:표준어
*우예:어찌
*느그:너희
*카디:그러더니 *캤다:그랬다
*저래:저렇게
*정신 사납다:정신 어지럽다
*함부래:절대로(‘함부로’의 의미로 생각되나 그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