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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Oct 30. 2016

얌전한 구름

 




 시내 상가 한복판, 안 틀면 손해라는 공식 때매 볼을 딱 맞대고 노래는 다 다른 노랠 튼다. 안경점, 등산복, 파스타. 들으면서 걷다가, 저기 대여섯 명 남짓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시끌벅적해도 남학생들이다. 노래가 몇 곡이 겹쳤는데도 자기들이 가장 값비싼 스피커다. 점점 더 커지다가 옆 가게 볼륨까지 꺾고 나를 지나치는데, 중2 아니면 중3. 상가 안을 마치 자기들이 점한 듯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비켜 서 있는지도 모르고 비구름 빠지듯 우르르 사라지는 저들을 지켜본다. 다시 시끌벅적한 시내다. 


 
 

 선생님께서 종례를 끝내시려다 갑자기   

 

 “이학주이 요 전에 기말고사 몇 등 했노?”


 “네? 18등요.”


 “오~~”

 

 선생님께서는 듣고 아무 말 없이 나가셨고, 뒤에 “오~” 한 건 맨 뒷줄 몇 명이었다. 반 배정을 받고 처음 이 교실에 앉은 날이었다. 처음 한 반 된 친구의 등수를, 그게 몇 등이 됐건, 야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내 일이라서가 아니라 “오~”는 분명 야유였다. 그러나 나는 뒤를 한번 흘겨보지도 못했고 왜냐하면, 맨 뒷줄이 누구고 누구고 하는 것 때문이었다.  

 둘째 줄에 앉아서 나는 쫄았다. 오늘 하루는 배정된 자기 교실,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됐지만, 나는 하필 둘째 줄에 앉았다. 내가 교실 앞문을 들어섰을 땐 거의 다 차고 빈자리가 몇 개 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낯익은 얼굴들이 있나 좀 보다, 맨 뒷줄과 눈이 딱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는 빨리 앉았다. 학년 통틀어 소위 젤 잘나간단 녀석들이 신호가 꼬인 교차로처럼 삐딱하게들 날 쳐다봤다.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간 뒤에야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졌다. 맨 뒷줄 그리고 나 사이의 거리는 자리도 멀지만 더 멀어지고 말았다. 모범생 이미지, 문학소년, 문예부. 작년까지 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나는 망친 시험 마냥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반에 다 모인 잘나가는 녀석들이랑 삐딱하게 맨 뒷줄에서, 교통신호 잘 지키는 앞줄을 쳐다보고 싶었다.  


 나는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담임선생님을 뒤쫓아 나갔다. 벌써 한 층 내려간 선생님을 계단에서 붙잡고선,    


 “선생님 죄송한데 저…다시 자리 앞줄로 바꿔주시면 안 돼요?”   


 거리를 확 좁힌 나는 교실 맨 뒷줄이었다. 바람대로, 잘 나가는 애들이랑 급식을 먹고, 시내 노래방도 가고,……거기서 한번은 담배엘 손댔었구나. 선생님께서도 대충 아셨을 거다. 왜냐면 내 성적이 두 배씩 떨어졌기 때문이다. 교실 아닌 계단에 따라 나와 자릴 바꿔달라는 얘한테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교무실로 다시 내려가시고, 나도 내려온 계단을 한 계단씩 툭툭 올라갔다. 기껏 친해진 녀석들이 볼라 복도에 난 그림자들을 살피며 툭툭.  




 나는 옆으로 비켜 주면서, 시내를 점한 듯 주고받는 소리에 귀까지 기울이고 섰다. 대여섯 무리 중 한 명이 나 같아서였다. 무리를 절대 앞서거니 못하고, 제일 큰 소리를 내는 한 명 뒤에서, 언제쯤 끼어들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가, 했다가, 했다가. 비구름도 아닌 게 따라다니는, 나 맞았다. 다시 시끌벅적한 시내다. 대여섯 다 비구름인 마냥 빠져나갔는데, 시끌벅적한 시내는 비온 뒤 얌전한 구름만 남은 하늘같이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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