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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Mar 09. 2017

논(non)





 논에 들어갈 맘도 없는 내라도 한 걸음 뗄 때마다 양옆에서 퐁당 퐁당 퐁당. 진흙 위 몸을 말리고 있던 개구리들이다. 겁 많은 저 녀석들 말고 오른쪽, 왼쪽 논의 어느 한 모(秏)도 이 길 위로 올라서지 않는다. 저것 봐. 쭉 자란 폼만 봐선 벌써 길쭉한 초록색이 여길 올라오고도 남는데. 자주 농사짓는 차량 드나들고, 차도 아주 가끔 한 대, 그리고 지금 나 같은 한량 위해서일까. 딱 내 신발 높이. 가을까진 별로 차이가 안 날 것이다. 


 이번에는 회색 길바닥 위에 거미가 한 마리 가만히.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을 까먹은 물거미이지 싶다. 쟤 안 놀래게 최대한 가 쪽으로 살금살금 지나왔다. 일부러 밟은 적도 많으면서 말이다. 


 ‘논에 들어가면 다 사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논과 논 사이 만들어 놓은 길도 걸으면서 괜히 폐를 끼치는 기분이었다. 하물며 논 건너 건너 저쪽은 고속도로인데 말이다. 우리 땐 농사짓는 게 당연했다던 아버지라면 기분이 어떨까. ‘가진 논이 서너 마지기쯤 되느냐 이눔아. 네 앞가림이나 똑바로 해라.’ 그러시겠다. 나는 발에 물들 듯 푸르른 논을, 저기 멀어도 쌩쌩 달리는 게 느껴지는 고속도로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본다. 그래 맞아. 이런 논 서너 마지기쯤 되는 농부도,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드라이버도, 나는 아니잖아.








non: …않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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