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소설]예술과 중력가속도

주파수와 나의 관성

by 이요마
예술과 중력 가속도(2016)

사진출처 : 알라딘


*보고 듣고 읽어 기록하기 27번 째.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예술책 아니다. 과학서도 아니다. SF소설이다. 배명훈의 소설집이다.(소설집치고 표지가 상당히 예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에요?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답할 수 있는 작가가 있는가. 나는 글쎄.


예전엔 뭣모르고 쉽게 답을 해버렸다. 내 왼쪽 가슴에는 박완서 선생이오. 오른쪽에는 김영하씨요. 가운데에는 장진 감독이 있소이다.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을 느릿느릿 읽다보니 그들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의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로 문체, 둘째로 종이질, 셋째로 표지다.


내가 전문가는 아닌지라 누가 잘쓰고 못쓰고 판단하지는 못한다. 이 리뷰에 별점이나 평점이 달려있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보면 '주파수'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2. 주파수


주파수라고 말하면 감이 잘 안 올 것 같다. 바이오리듬의 파동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결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동은 사람마다 다르다. 위 아래로 기복이 큰 이도 있고 오르락 내리락이 잦은 사람도 있을 게다.


나는 책에도 저자의 리듬이 담긴다 생각한다. 그 리듬이 바로 문체다. 이를테면 김훈 소설가는 두꺼운 붓을 들고 벼루에 먹을 잔뜩 묻힌다음에 화선지에 난을 치듯 글을 쓰는 듯 하다면,

김연수 소설가는 흐릿한 4B연필로 설계도를 잘 그려넣고 파스텔로 흐드러지게 색을 채우듯 글을 쓰는 것 같은. 작가마다 고유하게 가진 스타일이라고 해야할까.


이유는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문체를 분석하는 것은 논문과 평론의 영역이 아니려나.) 글을 읽다보면 사람마다 잘 읽히는 문체들이 있다.


길게 설명했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배명훈 작가를 사랑한다.


그의 이야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땅에서 오센치 정도 공중부양한채로 슬겅슬겅 미끄러진다.


그의 재주는 무거운 이야기도 쉽게 쓰인 언어로 풀어버리고, 어려울 법한 SF 미래 세계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쓴다.


더불어 그를 흠모하는 이유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SF에 적을 두고 있지만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카멜레온마냥 어딜가나 그곳에 정착하고, 마치 원래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실력은 지면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증명해냈다. 지문처럼 그 자체로 배명훈인 장르가 되었다.(매번 스타일을 변주하면서도!)


3. 요즘


나는 요즘 좀 그렇다. 글을 쓸 때면 정체된, 아니 퇴보했다는 느낌을 왕왕 받는다. 계산한대로 매일 일정한 수준의 글을 뽑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계산도 안 되고, 수준도 떨어지는 것 같다.


다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보는 눈은 오르는데 손이 따르지 않으니 참 미칠 노릇이다.


겨울이 신춘문예의 계절이라면,

이 맘때는 주요 문예지 신인상이 열린다. 올해는 달라. 올해는 나아질 거야. 하면서 또 글을 쓴다.

마감에 닥쳐서 초고를 쓰기 시작하는 나는 무슨 심보로 글을 쓰는가. 문체 하나는 자신이 있어! 하면서 개기던 객기도 이제 잦아들고 다만 우울하게 빈문서를 본다.


예술과 중력가속도를 보면서 느낀다. 문체가 백날 좋고 설정이 백날 좋아도 그 모든걸 스르륵 수습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 남은 건 예술과 관성뿐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되길 바란다. 우울한 날은 우울을 견디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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