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만나기 위해

네 이상형은 어떤 모습이니?

by 이요마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만나기 위해


살면서 여러번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네 이상형은 어떤 모습이니?


대개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연예인 이름을 대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 그런 질문.


연예인 이름도 잘 몰랐지만, 생각도 안 해봤던 질문. 나는 그 앞에서 그냥 웃곤 했다.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그런 이들은 보기를 주고 나보고 고르라고 했으니까.


이상형은 생각하는 범위내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뜻은 다소 편협한 것 같다.


'당신이 사랑하고 싶은 대상'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쉽게 답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넘기려했던 이유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 라든가,

나 같은 걸 사랑할 사람이 있겠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가장 컸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도 되고 싶은 내가 없는데 내가 뭐라고 남이 어떻고를 논하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퉁치면 장래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로 포섭할 수 있는, '되고 싶은 나'랄 것이 없었다. 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데 타인에게 관심을 갖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없는 부분을 타인을 통해 채우는 행위는 '나'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 때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없었다. 내 안에도 밖에도 나의 인생에도 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요즘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혼란이 오더라. 나는 누구인가. 내가 뭘 좋아하고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나는 진짜 나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하다가 시작한 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라는 에세이 매거진이다.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가 왕왕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발견한 건 두 가지였다.

먼저,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검열관'이 내 안에 있었고

둘째로, 나는 그 평가를 바탕으로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칭찬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고, 피드백을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검열관이 있었다.


그래서 검열받은 나는 항상 움츠러들어 있었다. 기가죽어 있었고, 그래서 늘 우울했던 모양이다.


나의 외모, 성격, 기호, 취향, 취미, 특기, 장점 등 비난할 수 있는 건 다 비난했다. 그 모든 일을 나 스스로 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후진 것', '별로인 것'으로 규정되어서일까. 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싫어했다. 거울을 잘 보지 않았고,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정이라도 해서 나 자신을 꾸밀 여지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나아질 것이 없으니까. 어차피 안 될 거니까. 그렇게 나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 나에게 이상형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지워졌다.


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앞으로 나를 보듬고 사랑하면 그만이니까.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에게 뜬금없이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느냐고. 녀석은 답했다. 잘 모르겠는 놈이라고.


내 안의 검열관이 날뛰었을 땐 그 말을 이렇게 해석했을 건 같다.


무색무취한 놈. 개성 없는 놈. 기억에 남지 않는 놈. 기억할 가치가 없는 놈. 운운.


하지만, 지금은 같은 말도 달리 생각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갈피가 잡히지 않는 놈. 파악이 잘 안 되는 놈. 예측하기 어려운 놈.

그래서

다음이 궁금한 놈. 내일이 궁금한 놈. 매번 궁금해지는 놈.


그래서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


나의 이상형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 자신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