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의 일을 수사할 때, 사람다운 방법으로 수사를 하는 것.
파리 생마르탱 대로의 으슥한 골목. 칼에 찔린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남자의 이름은 루이 투레. 사건을 맡은 매그레 반장은 루이 투레의 주변 인물을 한 명씩 만나며 사건을 풀어나간다.
탐정 혹은 반장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류 이야기는 '범인은 누구?'라는 질문을 좇아 읽게 된다. 그것도 살인사건이라면, 죽은 자와 연관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혈연, 사랑, 돈, 우정, 명분 등 수많은 이유들이 죽은 사람과 연결되어 허수를 걷어내고 '정말' 범인을 찾으면 이야기가 종결되는 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들은 남아있다. 매그레 반장도 다른 수사물/탐정물의 문법처럼 사건에 대하여, 피해자에 대하여 수사를 하며 사건의 전말을 한 조각씩 맞춰간다. 루이 투레의 부인, 딸, 딸의 애인, 전 직장동료,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된 전과자 등 매그레 반장은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조사한다. 이 대목에서 매그레 반장은 여타 수사/탐정물, 이를테면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 셜록 홈스, CSI 수사대 등(물론 내가 읽고 본 저작들에 한정한다.)과 차이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내가 나열한 다른 작품들에 나오는 탐정이나 경찰들은 사건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피해자의 사망 원인, 사망 시각, 다잉 메시지, 출혈의 정도, 피가 튄 방향,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의미, 각종 증거물 수집 등 '데이터'에 근거하여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에 반해 매그레 반장의 수사법은 '인간적(?)'인 편이다. 그는 피해자와 사건 현장에 대한 분석보다는 피해자가 주로 다니던 동선을 되짚어 걸으며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 살인이 일어날만한 동기 등을 상상한다.
더불어 나와 내 친구 빼고 다 범인으로 지목되는 모 탐정과는 다르게 잠재적 용의자 군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점점 좁혀가는 방식으로 취조하지 않는다. 다만 계속 듣는다. 이 사람 말도 듣고, 저 사람 말도 들으며 정보를 수집해간다. 사실 그 정보라는 것이 사람에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백 프로 팩트일 수는 없다. 거짓과 진실이 섞인 그 말들에서 그는 '증거물'이 아닌 '직관'과 '논리'로 사건을 풀어나간다.
물론 증거와 지문감식 등의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한 조사는 범인을 잡기에 더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작품이 쓰인 시기가 1950년대임을 고려하고, 수사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도 생각하더라도 매그레 반장의 수사법이 '인간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상상'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 자체가 풀어야 하는 과제가 된다. 과제는 해결되는 순간 종결되고, 다음 과제로 인해 잊힌다. 매그레 반장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 범죄에서 어떤 트릭을 쓰는지, 어떤 것이 사망 이유인지 보다 피해자가 죽은 '이유'와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변인들의 삶이 어떻게 (미미하게나마) 변하였는지에 대해 조망한다. 이 과정에서 사망한 피해자는 '죽은 시체'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사람'으로 사건이 끝나고도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사실 피해 당사자(특히 살인 사건)에 집중하며 책을 읽은 적은 별로 없던 것 같다. 대개는 범인이 어떤 방법(트릭)으로 죽였을까라거나 살인 동기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 장르를 즐겼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는 지워지고, 방법과 이유만 남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는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수사할 때, 사람다운 방법으로 수사를 하는 것.
처음 읽은 매그레 시리즈의 책이었지만, 이 책에서 느낀 따뜻함 때문이라도 다른 시리즈가 더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편과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