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항해하는 네 작가의 작업
* 사진 출처는 알라딘
* 10월까지 10편 리-뷰(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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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기 전에
오랜만에 책을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을 빽빽하게 남기고 싶어서, 그러다가 조금은 오기로, 조금은 불순한 목적으로 '내 맘대로 책 읽기' 씨리즈를 썼습니다.
과분하게도 많은 분들이 구독을 눌러주셨고, 앞으로 써나 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고마운 지인님들과 보이지 않는 구독자님들의 덕으로 하는 일이 잘 되어 업로드할 시간이 부족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짬이 생겨, 다시 시작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전처럼 매일 책을 읽고 쓰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확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야심한 시간에 제가 다시 브런치에 책 리뷰를 하는 이유는 일단 '시작'을 하려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빈둥빈둥 놀다가 밤 열한 시만 되면 마감하지 않음에 괴로워하던 마음이,
한 시고 두시 고 마감만 한다면 뽕(?)을 맞은 것처럼 펑ㅡ 퍼지는 성취감이,
그립고 또 고마워서 다시 시작을 해보려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하나 저지르면 어떻게 되지 않겠습니까. 시간 없다는 핑계를 줄여보려고 제목만 보고 선택한 첫 책이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입니다. 시간을 만들어서 한 번 다시 쪼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하여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도, 라이킷도, 공유도 언제든 환영입니다.(앗! 공유는 하실 때 어디다가 하신다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어디로 공유되는지가 궁금했거든요!)
1. 들어가며
(앞에 쓴 내용에 비해 분량이 적을 것 같아 걱-정이다.)
SF는 낯설다. 이 단어를 보고 먼저 떠올린 건 영화였다. 인터스텔라나 마션, 혹은 스타워즈 같은 우주선을 타고 한 없이 검고 조용한 우주에서 붕 떠있는 장면을 먼저 생각했다.(스타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
그만큼 나는 SF를 비롯한 장르문학에는 무지했고, 막연한 편견도 많았다. 먼저, 왠지 유치할 것 같다거나, 반대로 너무 어려울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어디서 생겨먹은 우월의식인지 알 수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나를 그렇게 인도했고, 별 이유도 없이 SF를 피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외국의 이야기일 것 같다는 생각. 이게 웬 국수주의 같은 말인가 할 수도 있다. 이 편견은 내가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키고, 두유 노우 김치? 두유 노우 갱냄 스타일? 하는 그런 뉘앙스가 아니라, '번역'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령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한다고 할 때, '웃기다'라는 단어를 바꾼다고 생각해보자. 타인에게 웃음을 주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살짝만 응용하면, 이를테면 '웃기는 짬뽕이네!'라고 변주해서 쓴다면, 이 말을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온전히 이 뜻을 대체하는 관용어나 속담이 없는 이상 백 프로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SF뿐 아니라 모든 번역문학이 가진 결함 아닌 결함이겠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이상하게도 어떤 것에는 관대하다가도 어떤 것에는 철저히 잣대를 대곤 하지 않는가. 나는 유독 장르문학에 대해 냉랭했다. 한국에 SF나 판타지로 유명한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제대로 보려면 외국 작가 책을 보아야할텐데, 그럼 번역 때문에 잘 안 읽힐 거고... 그러니 안 읽어야지 희희! 하는 비논리적인 메카니즘으로 이 장르를 피했다.
나는 나의 무식함으로 세 가지 실수를 한 것이다.
- 우선 SF는 그리 유치하지도, 매우 어려운 것(일부 하드 SF는 빡세다고 한다.)도 아니라는 것. 그저 과학적이라는 것.
- 한국에도 수많은 SF작가들이 있으며, 그들의 좋은 작품들이 아주 많다는 것.
- 막연히 거른 번역서들도 좋은 번역이 참 많다는 것.
정리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저건 후지고 노잼일 거야!'라고 속단한 내가 가장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2. SF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장강명 ×배명훈 ×김보영 ×듀나라는 조합은 나처럼 SF초심자(우주 가서 뿅뿅뿅한다고 생각하고 마는 수준)가 읽기에 충분한, 아니 과분한 라인업이었다. 약력을 읽지 않고 글만 읽어도 '앗!' 혹은 '으으으' 하는 멈춤의 순간을 만드는, 내공이 있는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네 명의 작가는 각자 태양계의 어느 지역을 하나씩 선택하여(행성이 되었든 위성이 되었든) 저마다의 색으로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넷의 스타일은 문체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전략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살짝만 말해보면(주관적인 평가입니다)
빠르고 명료하게 장강명 작가가 이륙을 하고,
바통을 받은 배명훈 작가가 엉뚱하게,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방향으로 곡선 비행을 하고, 성층권 같은 안정궤도에 들어온 듯 긴 호흡으로 그러나 점차 가속을 하며 날아가는 김보영 작가의 글을 지나,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여 우리와 다른 종족 사람들의 사연을 생생히 접속하는 듀나 작가의 글로 마무리된다.
고 말할 수 있겠다. 이처럼 4인 4색의 이야기들이지만 저마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나가수 같은 경연이라기보다는 함께 하나의 목표 'SF'를 향해 함께 비행하는 동료의 모습이었다.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시너지를 내는 동업자들의 유대감이라고나 할까.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라는 제목은 어쩌면 한국의 SF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단정 짓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미 늦은 것은 없다. 다만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쓸 줄을 모른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관성으로 움직이는 이들이다. 여태까지 달려온 혹은 날아온 힘이 있기에,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하고 위로할 수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 한국 SF의 관성에 탑승해보기 좋은 책이다. 아마 그 힘 그대로 다른 책까지 넘어가기도 수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