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기 혐오자들을 위한 이야기
* 사진 출처는 알라딘
* 10월 31일까지 10편 리-뷰(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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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거칠게 나누면 결과는 크게 둘로 나올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 혹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람들 아니,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답도 하지 않고
글쎄요...... 이런 건 생각해보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글쎄요... 이런 건 생각해보지 않아서...라는 답을 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면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답도 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는 이 행도도 사실 '자기혐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명료한 질문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 앞에 생각해보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을 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하고 말이다.
책은 '자기혐오'로 자신을 갉아먹었던 저자 자신의 경험과 '자기혐오'로 고통받은 혹은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자기혐오'는 무엇인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말하자면 '자기혐오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명명한 것인데 이 시도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혐오'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폭식을 하거나 거식을 하는 것 같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에서는 '멀쩡히 잘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하물며 팝스타나 할리우드 스타까지도 자기혐오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혹은 그녀를 '자기 혐오자'라고 파악할 수 없는 이유는 자기혐오가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길고 질기게 잡초 같은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거나, 알더라도 타인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끙끙 앓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한 친구와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는 녀석의 질문에 나는 자기혐오에 관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남들은 전혀 이유라고 생각지도 않는 이유, 이를테면 어릴 적에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넌 말주변이 없잖아.'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평생 발표나 무대 공포증이 생겨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게 이유가 되는지 전혀 몰랐어. 나는 전혀 상상도 못했거든.
그의 황당한 표정 뒤로 나는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세계, 익숙한 이야기,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조금씩 떨쳐내야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적합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여혐'이라는 언어가 나타나면서 '페미니즘'과 '여성의 삶'에 대한 조명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듯(이전부터 일어나 왔지만 표현되는 언어 없이 묵살되거나 의미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것들) '자기혐오'라는 언어를 확보함으로써 '이유가 되지도 않을 것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체화되고 논의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자기 혐오자들을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경험으로 이끌어내며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연대'로 이끌어냈다.
물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혐오'를 겪는 사람들이 선뜻 연대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세상에서는 '별 것도 아닌 것, 이유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야기를 용기 있게 꺼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혐오 자체를 꺼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자기혐오'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설명하는 일은 상대의 입장에서 가장 비슷한 분류 체계의 단어를 골라 이 말과 비슷한 말이야!라고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혐오'의 경우는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상대의 머릿속의 단어 사전에 연관 데이터가 전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카테고리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게 왜? 무슨 문젠데?"라며 굳이 단어 사전에 추가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게 왜 중요하며,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큰 문제라는 것을 설명해봐야 서로 소모적인 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어쩌면 이는 '여혐'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와 비슷한 메커니즘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상대를 이해시킬 필요도 없고, 이해시킨다고 해서 나의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간직하고 간다. 그래서 고인 물이 썩듯이 혐오는 한 개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앉아 더 고약하게 썩어간다.
때문에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마음속에 고인 혐오를 순환시켜 사라지게 할 수 있도록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자기 고백'을 이끌어내는 이 책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자기혐오를 가진 사람들의 지인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새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책이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남는 말은 결국 이 문장이다.
나를 혐오하는 것도 나고,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나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살아가든, 긍정적으로 살아가든 결국 사는 것은 나다. 매일 거울 보며 나를 가꿔도 내 인생이고, 거울 속의 나를 싫어해 거울을 보지 않으며 살아가도 결국 내 인생이다. 다시 말해, 자기혐오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성인군자나 유명인들 혹은 주변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뭐라 뭐라 코멘트를 하더라도 결국 '내가' 판단해야 할 문제다. 적당한 피드백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들이 나의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좋든 싫든 나는 나로서 살 수밖엔 없다.
그렇기에 일단 거울 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왜 사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등등 끝없이 묻고 답해야 한다. 자질구레한 질문까지 던질 만큼 나와 친해 질 무렵이면 나는 전보다는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자기 방관적인 대답은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럼 글을 쓰는 나(학곰군)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느냐고?
아직은 완전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점차 좋아지는 중이에요.
그리고 앞으로 더 사랑할 것이에요.
정도 되지 않겠는가. 나는 이십여 년간 애써 외면하고 피하던 나의 본모습을 매일 새로 발견한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새롭고 궁금하다. 내가 이런 면도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면, 예전 같아선 난 그것도 못할 거야. 하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단, 아 그런 면도 있었군! 하고 평가는 뒤로 민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나에 대한 평가들, 00을 잘하나?라는 질문 앞에는 습관적으로 말한다. 잘 못합니다. 하고. 하지만 이런 부분들도 나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정리해가고 있다. 이를테면 "야. 그땐 잘한다고 해도 되었어. 너 그렇게 썩 못하는 정도는 아니야!" "그래. 미안해. 다음엔 상중하 중에 중정도 된다고 말하자." "차라리 그 정도면 괜찮아. 많이 좋아지고 있어!" "그래 고맙다!"처럼 오랫동안 사귄 친구와의 대화처럼 말이다. 어차피 둘 다 '나' 잘되자고 하는 말이니까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자!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한다고 해도 제대로 들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나를 보자' 보고, 함께 포옹도 하고 길게 이야기도 나눠보자.(공책에다가 질문을 쓰고 스스로 답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마치 분신사바를 하듯이 글자들을 토해져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 1시쯤 24시 카페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하면 내 안의 나도 감성 폭발해서 줄줄줄 필담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씩 발견해가자. 매일 새로운 나와 만나는 일은 '자기혐오'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그렇게 '우리'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누려보자.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