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리에 관하여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가 없었다. 빨간불도 초록불도, 하다 못해 깜빡깜빡 점멸하는 노란불조차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도리(융통성을 의미, 어감을 살리기 위해 이하 유도리로 씀)있게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넜다. 자동차들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피며 얼추 속도를 조절하며 달렸다.
신호없는 낯선 세상 앞에서 사람들은 태연했다. '신호같은 것은 상황보아 가며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 또한 유도리있게 길을 건넜다.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신호가 꺼진 신호등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건널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유도리'때문인 것 같다.
나는 안다.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환경이 오염된다는 것을, 약자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인간은 평등하고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 외에 수많은 가치들을 배워왔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길거리에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매일 청소를 함에도) 마주하고, 차별이 만연한다는 것을 알면서 묵인하며 살고, 항상 사람마다 주어진 인생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이 당연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 당연한 것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돌리기위해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냥 유도리있게 넘어갈뿐이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그대로다. 나는 미드 로스트의 유명한 대사처럼(요태까지 날 미앵한고야? 물논)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세상은 견고하게 자신의 모양새를 유지할 것이고, 배우는 당연함과 세상살이의 괴리는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부조리한 시스템과 기성세대들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살면서 '갑갑하다'는 평가를 왕왕 들었다. FM(필드매뉴얼-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칭하는 의미로 이 글에선 사용)내지 바른생활을 한다는 수식어도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이었다. 나를 그런식으로 호명한 사람들, 그리고 그중 대부분 나보다 어른이던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유도리가 그렇게 없어서 잘살겠나.
나는 이 말을 새겨들었고, 그렇게 여전히 남들보다는 느리고 답답하지만 때때로 유도리를 발휘하는 순발력 떨어지는 어른이 되었다.
미련한 나는 유도리를 공부하듯이 익혀갔다. 대개의 유도리 메카니즘은 "원칙상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만"이라는 밑밥을 깔고 시작했다. 전제가 나온다음에는 예전부터 그래왔다거나,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설명이 붙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토달지 않고, 예전부터 그래왔음을 수긍하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그래왔다면, 그것이 예전부터 잘못되었던 일이라면 바꿔야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겠지만. 나는 의문을 품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시키는대로, 남들하는대로 살아야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당연한 상황을 유도리있게 외면하고 살아도 사는 데 불편한 것도, 생존을 위협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만든 기성세대를 욕하면서도, 나는 외면하면서 시스템을 공고히하는데 이바지하면서 살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미 내가 욕하던 어른들의 모습으로 그들이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땐 그게 당연했어라는 말을 반성없이 던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나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때 흠칫흠칫 놀란다. 교과서에 실려있던 최승회의 시 <북어>의 대목처럼 나도 모르게
하며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사회에 물들어가는 것이잖아!'라고 합리화하는 경우도 많다. 부인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나는 함부로 옳은 가치와 당연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행동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이 기만처럼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눈을 감기때문이다. 그런 내가 싫지만 급진적으로 사회를 전복시키겠다는 용기나 패기가 없으니 우물쭈물 계속 부역한다.
그렇지만,
당장 세상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더라도, 나의 방법으로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고 싶다. 내가 북어라고 다른 사람도 북어취급하는 별로인 인간이 되고 싶진 않다.
그러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글을 쓴다고 별안간에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뿐이지 변할 수는 있다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쉽진 않겠지만 유도리있게 외면해온 일상에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열고 치열하게 물음표를 만들어보고 싶다.
당장 세워놓은 계획도 없고, 아마 눈에 띄는 성과랄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면, 일단 시작해보고 싶다.
요령없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