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 <산책자>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로베르트 발저요 라고 답한다.
네? 로베르토 누구요?
로베르트 발저요.
로베르토 발저... 좋아하시는구나.
아뇨. 로베르'트' 발저요.
그 로베르'트' 발저는 어떤 책을 썼어요?
<산책> 같은 산문이나 <벤야멘타 하인 학교>가 있는데요.
네. 음... 네 음 어. 네.
네. 뭐 그렇죠.
누군가 어쭙잖게 자신의 세계문학력을 자랑하려고 한다면 발저를 말해보라.
열에 아홉은 그를 모르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게다.
나름의 팬심으로 돌려서 말했지만, 로베르트 발저는 유명한 작가가 아니란 이야기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단 여섯 종뿐인,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작가다.
그럼 로베르트 발저를 무엇하러 읽느냐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혹은 잘 모르고 지나치는 그런 위치.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맛집 같은 힙스터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바로 로베르트 발저다.
로베르트 발저의 짧은 산문과 소설들을 모은 작품집
발저의 세계를 얕고 넓게 탐방할 수 있는 최적의 책이다.
정제되고, 깔끔하고, 유려한 문장을 기대했다면 순순히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에는 파격이 가득하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배워온 수많은 문법들,
대충 이 글은 이런 식으로 써야겠다 싶은 그 방법들을
<산책자>에서는 1도 생각하지 않고 지맘대로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런데 그 파격의 자유로움이 주는 충격이 퍽 짙게 남는다.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니; 내가 뭘 본거지? 라든가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그렇게 내뱉던 혼잣말이 내가 알게 모르게 체득해온 자기검열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
책은 끝... 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짧은 소설과 산문이 무려 42편이나 실려있다!
준비는 넉넉히 해뒀으니 한 번 속는 셈 치고 빠져보라.
치명적인 글들이 당신을 향해 열려있다.
솔직히 말해서 책 내용의 반 이상이 궤변에 가깝다.
그래서 정보를 얻고 싶거나
재미있는 플롯을 기대한다면 보지 않는 게 낫다.
이 책의 묘미는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얼척없음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황당한 체험이 주는 짙은 여운과 감동은
이 책이 당신 인생 최애 책이 될 것임을
학곰이라는 이름을 걸고 자부한다.
(곧 유명해 질거니까 믿어보세요 ㅎㅎ)
리얼 힙스터는 힙하다고 쓰인 곳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치열하게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간다.
더디게 힙한 외길인생 스웩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세여. (저는 이거 너무 좋아서 아껴 읽을라고 6개월간 낭독으로 읽음;;)
책 속 숨은 TMI를 파헤치자
<산책자> 수록 단편 소설 <헬블링 이야기>에는
나, 내, 나의, 헬블링은 등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 표현이
종이책 12장 분량동안 246번이나 쓰인다!
어린 시절 일기를 쓸 때 학교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일기는 너가 쓰는 거니까. <나는>이라는 것은 쓰지 말아!"
초등학교 저학년도 의식해서 쓰지 않으려는 '나는'을
이 아저씨는 지맘대로 246번이나 썼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까 더 매력적인 로베르트 발저.
이 정도 영업했으면 한 번 읽어보쟈.(뻔뻔)
느슨한 빌리지 에디터들이 뽑은 책들을 보고 싶다면?
https://brunch.co.kr/magazine/nvcs
↑ 위 매거진을 구독해주새오! ↑
#책추천 #추천도서 #독서 #서평 #북리뷰 #책리뷰 #책 #느슨한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