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버스데이 걸>을 읽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생일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일 년에 딱 한 번밖에 없는 정말로 특별한 날이니까 이건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지요. 그리고 유례를 찾기 힘든 그 공평함을 축복해야지요.
작가의 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작년(2016년) 생일에 큰맘먹고 CD와 DVD를 이만 엔 어치를 지르면서 '모처럼 생일이잖아~'하며 호기를 부렸던 이야기를 하면서 생일의 특별함을 이야기한다. 매일 조깅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며 루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안심(?)도 되었다. 하루키도 나와 다를 바 없이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의 화신 하루키에게도 생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생일은 '탄생'보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특별한 하루'에 의미를 두는 듯 하다. 그에게 생일은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하고, 마땅히 호사를 누려도 괜찮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날인 것이다.
생일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다를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알고는 있지만 다른 보통날(?)들과 다르지 않게 보내는 사람. 아예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간혹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면 주변에 "나 며칠 후에 생일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스스로의 탄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타인들과 자신의 이 세상에 났음을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자신감이 멋지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들이 빛나보이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축하는 받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위에서 말한, 자신의 생일을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이들은 축하를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마땅히 존중받을 존재라고 생각하고, 타인들도 자기가 자기를 대하듯이 존중하기를 바란다. 축하와 사랑과 관심을 받아 '나'를 세울 수 있기에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그들이 그들로 존재할 수 있게 기꺼이 축하하고, 존중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축하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거나 치켜세울때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거나, 그렇지 않다고 꽤 오랜시간 부인을 했던 것 같다. 축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상황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으쓱하면서 우월감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박탈감을 느낄테니까. 내가 뭐라고 그런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내가 뭐라고'에 있다. 이 생각은 '나'를 낮추는 겸손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를 깎아먹는 말이다. 축하를 받고 전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이런 나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존중하지 않았다.(지금도 좋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감히 남들보다 위에 선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그것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축하를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축하해주는 상대의 호의를 자신을 깎아내면서 방어해놓고 다음번에 다시 축하를 기대하는 것은 참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축하받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고마워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보낸 십 수년의 시간이 아쉽다. 그때 축하의 말을 건내던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축하를 축하로 받아들일 수 없던 어린 나에게 또 미안하다.
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본 내용도 길지는 않을 게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에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의 그림을 콜라보레이션 한 60여 페이지되는 얇은 책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를 짧게 줄이면 이렇다.
스무 살 생일날 밤, 서빙 알바를 하는 나는 매니저 대타로 사장의 방에 음식을 배달하러 갔고, 사장은 생일이니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노라고 말한다. 나는 소원을 말하는데...
소설 속 '나'는 작가의 말에서 하루키가 언급하는 것만큼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생일에 일을 한다는 것에 한탄하지도 않는다. 생일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일을 하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생일은 특별하나 굳이 타인들에게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날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특별할지언정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녀가 사장에게 생일을 들킨다(?). 부러 숨기기보다는 구태 말하지 않은 편에 가깝기에 들켰다기보다는 우연히 사장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근데 자네는 몇 살이나 되었나?"
"스무 살이 된 참입니다."
'스무 살이 된 '참'이라니. 난 이 미묘한 표현이 좋았다.
내가 생일 인것을 남한테 말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내가 오늘 생일 인것을 알고는 있고 누군가 축하를 해주면 좋겠지만서도 내 주제에 무엇하러 그런가. 하지만 생일이긴 한데...
하는 느낌의 머뭇거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난 말이 아니었을까. 어떤 이는 이 장면을 갑갑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큰 쾌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은근히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캐치하고 사장이 축하를 건넨 순간 '나'의 삶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물론 사장의 축하 방식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늙은 남자의 방에 음식 서빙을 하러온 스무살 여자에게 축하의 의미로 와인 한 잔을 권하고, 다짜고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굉장히 별로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의 축하는 그날의 첫 축하였고 괜찮다고 사양하는 그에게 선물(소원)을 증여한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선물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받았을때의 기쁨보다는 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과 보답해야한다는 압박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는 날까지 사장을 볼 수 없었다. 사장은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 역시 그를 찾지 않았다. 이상한 비밀친구(?) 같은 분위기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가 그나마 평범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둘의 만남이 한 번에 그쳤기 때문이다.(사장의 축하법은 다시 생각해도 별로였다.)
다시 하루키의 말을 빌려온다. 생일은 '특별한 하루'이고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공평한 날이다.
기꺼이 축하하고, 축하를 받는 일은 생일자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로 여기고,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특별한 날을 갖고 있는 축하하는 이도 기꺼이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여전히 생일은 어렵다. 하지만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축하를 하자. 모두 존중받는 사람이 되어보자.
책 속 숨은 TMI를 파헤치자
이 책은 가급적 물성이 있는 종이책으로 감상해야 한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일러스트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느슨한 빌리지 에디터들이 진심으로 고른 다양한 책이 궁금하다면?
↑ 위 매거진을 구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
#책추천 #추천도서 #독서 #서평 #북리뷰 #책리뷰 #책 #느슨한빌리지 #한국소설추천 #소설 #어려운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