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니까 카페에 나왔다

계획세우러 왔다가 '새해라고 달라진 건 없고나.' 생각하는 이야기

by 이요마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지난날의 나는 '내년에 해야지ㅎ'라는 말을 숨 쉬듯이 남발했다. 미루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 것들을 보류했고, 디데이인 1월 1일이 되어 든 생각은

'새해라고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고나.
새해라고 별 것 없고나.'

하는 어쩐지 김 빠지는 감상이었다.

새해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해돋이 구경도 모닝 운동도 아니고, 새벽 네시 반까지 께임하다가 잠든 것이었다. 내게 12월 31일과 1월 1일의 경계는 빨간 날과 빨간 날 전날 정도의 의미밖엔 없었던 것이었을까.


집에만 있기가 어쩐지 아쉬워 집 앞 카페에 나왔다. 더치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다이어리를 폈다. 작년 결산을 했다. 2018년은 내게 퍽 의미 있는 해였기에, 결산한다는 핑계로 1년간 한 일들을 정리하는 일을 벌써 서너 번 했고, 오늘 또 하고 있다. 막상 하는 건 힘든데, 해놓은 걸 지긋이 바라보는 일은 즐거운 것 같다.


즐겁기에 결산 내용을 조금 읊어본다면, 살면서 가장 많이 책을 보았고, 돈을 모았고, 멋진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일을 벌였고, 엎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해간 한 것들을 보며 연말 시상식 기분을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먼저, 정신적으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에 그쳤다는 것. 올해는 물성이 있는 결과물까지 만들어 보고 싶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그런 욕심이 난다. 2019년 연말 시상식에는 손에 잡히는 것과 함께하는 것으로!


두 번째는, 꾸준하지 못했던 것. 작년엔 참 쉽게 여러 것에 꽂혔고, 금방 싫증이 났다.


연초의 '치명, 세련, 임팩트'

그 담엔 '셀럽', '외길인생'

그리고 '설큘레이션', '하이 텐션'

연말엔 '맛집 블로거'

까지.


수많은 단어를 좌우명으로 삼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 포기하거나 보류한 프로젝트도 많았다. 나름대로 성공한 것도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막 써도 꽤 많은 일을 했던 거 같다.



치명적인 캐릭터가 되기 위한 가이드 <치명적 올스타> ☞ 문득 회의감 들어 접음

합정-홍대-상수 부근 라멘집 통일지도 그리기 <라멘여지도> ☞ 3주 만에 라멘 물림

친구 얼굴 그리기 프로젝트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 포토샵 그림 그리는데 빠져서 손그림 접음

서평씬을 정복하고 도서출판문화에 이바지하려는 빅 서평 프로젝트 <오각형 책리뷰> ☞ 에너지 고갈과 이런저런 이유로 보류지만 새해에 멋지게 할 것!

매주 새로 나온 책을 표지만 보고 골라보자 <표지 드 느빌> ☞ 체력 문제로 보류했으나 다시 시작 예정

동팡저우(소화기) 사진전 ☞ 현타가 와서 엎었다가 재추진중

팟캐스트 기린책방 시즌3 종료 ☞ 합의하에 종료

왕복 4시간 통근하다가 빡쳐서 기획한 <장거리 통근자의 고백> ☞ 빡만쳐서 기획 중단

브이로그 프로젝트 부평구청역에서 광명사거리역까지 걸어가기(4시간) <걸어서 광명 찾자> ☞ 촬영/편집자 섭외 조율 중에 그 친구가 재취업해서 보류

스시와 라멘(일본음식) 마음껏 먹는 인생이라 스미마셍 맛집 블로그(음식 픽셀아트 인스타) <스멘마셍> ☞ 몇 개 밀렸지만 진행 중. 최근에 정호영 셰프님이 댓글 달아줘서 기분이가 젛음

<서양미술사 백일잔치> ☞ 절찬리에 마무리

그 외 이름도 붙기 전에 사라진 프로젝트들



써놓고 보니 거창해 보이지만 결과물로 남은 건 얼마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보다 새로운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망해도 된다는 마인드로 진행하면 마음 편하게 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소득은 나의 스케일이 작다 보니 아무리 망해도 리스크가 별로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이다. 올 한 해도 수차례 망할 것이고, 그중에 재미난 것 하나 정도는 건져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작년보다는 경험치가 쌓여서 더 낫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1월 1일 구태 작년 결산을 쥐어짜내는 이유는 내 브런치를 다시 살리는 것이 올해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구독자 수와 조회수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올해는 신경 쓰지 않아 볼 생각이다.(그럴 수 있을까.)


다만 글의 수로 나를 증명해보고 싶다. 가급적 올해 읽은 책과 본 영상물(께임 포함)들을 빠짐없이 리뷰하고, 주기적으로 이 글 같은 뻘글도 쓰고 해서 글 쓰는 자아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이젠 말만 남고 행동은 몇 년째 멈춘 소설 쓰기도 다시 해보고 싶다.


새해라고 별것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2019년의 나는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나는 여전하게 소진된 마음과 체력을 다스리면서 작년처럼 많은 뻘짓을 기획했다 엎었다가 할 것이다. 그리고 위에 쓴 대로 올해는 열매를 수확하고 싶다. 쪼그만한 성과물이라도 얻어진다면 그걸 거름으로 2020년엔 또 무언가를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