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운세를 보다가

애매한 시기에 신년운세 보다가 급 계획 세우는 이야기

by 이요마

신년은 아니지만 2019년 신년 운세를 봤다. 신정으로도 구정으로도 새해가 시작된 지는 조금 된 애매한 시점에 말이다. 휴대폰 화면에 나온 나의 올해 총운은


연초에 세운 목표를 꾸준히 실행하여 연말에는 노력에 대한 결실을 얻을 운세


라고 나온다. 애석하게도 나는 (신정도, 구정도)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았고 지금이라도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한다. 거국적이거나 40년 비전 같은 걸 만들 것은 아니지만, 비장한 마음으로 일단 집 밖으로 나왔다. 24시간 하는 드라이브 쓰루 맥도널드로 걸어간다. 내일 출근하지 않는다면 캐주얼하게 빅맥 하나 때리면서 계획도 세우고 책 한 권도 읽고 오련만 일요일이니 그냥 에이 컵 오브 커피나 한 잔 할 요량이다. 무인 주문대에서 아이스커피 라지 한 잔과 애플파이 하나를 주문하고 결제한다.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할까 대기번호가 나오는 스크린을 보며 멍하니 있다 보니 나의 번호 6114가 보인다. 아르바이트생이 번호를 부르기 전에 커피와 애플파이의 단출한 쟁반을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와 구석에 자리 잡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울 차례다. A5 크기의 작은 스프링 노트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브라 타프리 클립 0.7 검은색 펜을 꺼낸다. 첫 장을 펴니 달력이 이미 그려져 있다. 구정 이후부터 날짜가 시작되는 것을 보다가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오늘처럼 센치하게 밤에 맥도널드에 걸어 나와 계획을 세우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의 결말은 연간 계획을 세우다 말고 내일의 할 일을 적다가 출근에 지장가지 않게 집에 돌아갔던 것 같다. 사실 오늘도 그날과 다를 것 없어서 20분 안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터이다. 그래도 오늘은 거칠게라도 계획을 짜야만 한다. 연초에 짠 계획이 이루어진다는데 만들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사계절을 말할 때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말하듯, 봄은 시작의 계절이고 2019년은 말하자면 첫 번째 계절에 들어서는 것일지니 어쨌든 연초라고 믿는다면 연초인 마지노선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꼭 계획을 세우리다.


일단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반복 재생시켜놓고 노트의 빈 페이지에 S M T W T F S를 쓴다. 계획을 세울 때면 나는 달력부터 그리고 본다. 보통 석 달, 백일 정도 그리는데 오늘은 3월 달력까지만 그린다. 앞 페이지를 보고 온 터라 어차피 100일이든 1,000일이든 오늘 이후론 이 달력을 안 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3월은 3주가 남았고 2019년은 아홉 달 하고 3주가 남은 셈이다. 대충 290일 남짓 남은 올해 나는 무엇을 해야 연말에 결실을 얻을 수 있을는지 생각해본다.


아니, 어떤 결실을 얻고 싶은지로 생각을 바꾼다. '무엇을 해야'를 생각하면 나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것이기에.


막상 원하는 걸 써보려니 없다. 회사 다니기 전에는 밤에 곧잘 나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곤 했던 것 같다. 취직도 바랐고 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생각도 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었다. 앗. 쓰다 보니 이걸 이루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숙고한다. 그런 고민과 상상의 시간들을 보내던 나는 지금 3월에 뜬금없이 새해 결심을 쓰는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1년 반의 시간을 거쳐온 나는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늙었고, 많은 책을 읽었고, 조금 아프고,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거치며 나는 많이 성장하고, 어느 부분은 퇴화하면서 그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만 같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았다. 사회라는 물이 들어서 '진짜 나'와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야밤에 4B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매일매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업로드하던 열정 있던 나를 그리워했다. 객관적으로 과거의 나는 돈이 없었고 순수했고 찌질했고 우울했으며 불안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단칼에 거절하겠지만 돈 없고 시간은 많던 그 시간이 그리울 때도 없지는 않다. 지금은 시간은 없고 돈은 전보다는 생겼으니 시간 많던 그때가 그리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연초이고 미래의 계획을 세우며, 나는 그때의 나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한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고민한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거나 그리워하지도 않으려 한다. 지금의 계획이 연말에 이뤄진다는데! 과거에 매 달린다 한들 무엇하리! 그렇지만 나는 문득 사주에 이런 말도 덧붙여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학곰군 님의 강점은 꾸준함과 성실성 그리고 일관성입니다. 언행일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인내심을 갖고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 일관성이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다를지언정 다른 시간을 통과하여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는 같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 시작과 끝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자(성장은 하되 인성적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 말자는 의미)는 캐치프레이즈는 언제나 일관적인 사람이 되자는 바람을 갖고 있던 게 아닌가.


어찌 되었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글과 생각을 내보이고 싶은 사람이고, 친구들의 얼굴쯤은 10분 안에 슥슥 그리고 싶은 사람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바뀐 것이 있다면 환경뿐인 것이다.


나는 나의 직장을 좋아하지만 출근을 하면서 삶의 시계가 틀어진 점은 애석하게 생각한다. 출퇴근 시간으로 말미암아 나는 나의 시간 통제권을 잃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던 짧은 백수 시절엔 내 맘대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소속도 없었기에 표현도 자유로웠던 것 같다. 하나 달라졌다고 느끼는 나는 시간에 매여있다. 9 to 6 + @의 시간에 출퇴근 3-4시간까지 내맡긴 시간들을 살고 있다. 적이 있기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적이 조심하게 되는 움츠러든 채 살아가는 시간들이다.


그런 환경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생기던 이상한 결핍감,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던 일들이 나의 달라짐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연초에 계획을 세우니 나도 알지 못했던 사실도 깨닫고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환경이 별로일지언정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기에 핑계를 대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견디거나 버티기보다는 일상에서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다시 계획의 문제다. 시간은 열한 시가 넘었고 출근을 하려면 바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져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과 지금의 고무된 감정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충돌한다. 하지만 내일은 오전에 회의가 있기에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브런치에 부담 없이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기획이나 공동 매거진이 주는 부담, 혹은 이런 잡문도 통일된 썸네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글은 써놓고 썸네일을 그리지 못해 올리지 못하다 시의성이 떨어져 폐기한 글들도 있다.)


올해는 주저하지 않고
내 생각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다.


분량이나 수준, 때로는 주제까지 고민하다가 지레 접은 것들이 많았던 작년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거나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까지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편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비장해서, 너무 거창해서 관뒀던 일들은 접어두고 일단 뭐라도 해봐야겠다. 큰 일이다. 잠잘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글은 이렇게 마쳐야겠다.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세우도록 하자. 편안한 주말들 되시길. 그리고 즐거운 한 주가 되시길. 모두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