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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n 21. 2019

착하게 살진 않겠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을 읽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백세희 / 흔

13,800원



소장가치 6 / 트렌디 8 / 재미 6 / 정보 9 / 감동 7

추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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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착하게 살진 않겠어>

* 이 글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2』의 리뷰보다는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들어온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남들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착함'이라는 지칭은 내게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지만 지우고 싶은 주홍글씨이기도 했다. 대개 자기주장이 적고 순종적인 사람들이 얻기 쉬운 '착한 이' 타이틀은 사람을 얽매는 장치가 된다. 가뜩에 남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이들은 타인이 프레임 지은 착함에 갇히기 쉽다.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할지 몰라도 '착한' 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맞춰갈지도 모른다.


유한 사람이 꼭 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늦되게 알게 되었다. 스물넷의 어느 날 나는 나의 착하기 위한 착함을, 이를테면 잘 거절하지 못하고 제 의견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고 싫은데도 양보하거나 내 것을 내어주는 모습을 발견했고 그 모습이 소름 끼치게 환멸스러웠다. 나의 노력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고, 착하다는 코멘트를 해주길 바라며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같잖아 보였다.


그때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관계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쓸 때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았다.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은 대학에서 엠티를 갔을 때였다. 무슨무슨 회의 때문에 소집된 모임이었고 대충 안건을 해결하고 술들을 마셨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조용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있었다. 그날은 자리를 주도하는 친구들이 오버페이스로 달리다가 오바이트를 했고, 나는 평소 몸에 밴 행동대로 토사물을 치우려고 했다. 누구도 치우려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아마도 착하다는 평을 의식했던) 나는 맨 정신으로 묵묵히 흔적들을 치워나갔더랬다. 하필이면 토한 친구는 많이 취해서 손가락을 제 목구멍에 넣어가며 장에 있는 모든 걸 내뱉을 기세로 꺼내놨고, 화가 난 나는 참아왔던 쌍욕을 했다.


그때의 묘한 분위기. 쟤가 욕을 하네 하고 바라보는 시선.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하는 그 실망의 눈길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끝까지 바닥을 치웠고, 이후로 그 모임에 잘 안 나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착한 아이라는 타이틀을 씌워놓고 불편한 상황을 치울 때까지 방관하던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왜 욕을 했지 하면서 나를 타박했으니, 착함 프레임에 강력하게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부턴 한 번 두 번 거절하거나 내 의견을 얘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착한 짓 해봐야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서운함때문이었다. 이유는 다소 소심했지만 이런 행동들이  결과적으론 내가 거절하거나 원치 않을 때 단호하게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고, 내 마음도 편해지는 걸 느끼게 하는 경험이 되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는 우울증 가진 작가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녹취하여 개인적 코멘트와 함께 풀어낸 책이다.

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작가는 퇴사를 바라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며 자해를 시도하는데, 상담을 하는 와중에 이런 말을 한다.


나: 이 정도로 난도질해야 진짜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선생님: 그걸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나: 보여주면, '아, 얘 지금 진짜 제정신 아니구나?' 하고 납득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납득이 왜 필요하냐고요.

나: 납득했으면 좋겠어요.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다음 문장으로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착한 아이 프레임에 갇혀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고, 이제야 그때의 내가 왜 괴로워하면서도 그 타이틀을 놓지 못했는지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랐고,

나는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는 걸 무서워했고,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았고,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이 모두 생각들에서 나보다 타인이 앞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겐 나보다 타인의 시선이 먼저였던 것이다. 나도 내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남들의 시선에서 납득 갈만한 것이길 바랐던 것이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도 쓰렸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나아간 저자의 마음이 이해되어 그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책을 마저 읽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생각만큼 나에 대해 생각해주지 않는다. 다만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고, 그 시간에 남이 보는 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기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생각이 들지라도 내 감정이 원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나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를 가장 챙겨할 사람은 결국 나이고, 언제나 나는 나를 대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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