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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Dec 15. 2019

힘든 건 그저 힘든 것이다.

오늘의 통찰 씨리즈

* 오늘은 리를ㅡ빗 촉촉모먼트



올해는 많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고 나조차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면서 비로소 '힘듦'을 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 그나마의 수확물이었다.


먼저 힘든 건 그저 힘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알게 모르게 힘듦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였다. 이따금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나 이러이러한 것이 힘들어.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그게 힘들다고 하면 안 돼. 엄마는 이 나이에...


당신의 힘듦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런 말 앞에서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길어지는 엄마의 불행의 역사를 듣다 보면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어야만 했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것이었고, 그걸 견디어낸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자취방에 혼자 있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내가 조금 힘든 건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내가 바란 건 다만 힘들었구나 하는 한 마디뿐이었는데 그거 바라는 것도 사치인가 싶을 때 참 서러웠다.

힘든 와중에 인복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썩 괜찮은 선택들을 하고 할 일들을 해가면서 힘듦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을 경계하라거나 너가 힘들다고 앞에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이나 힘들면 그만두고 공기업을 준비하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팠던 그때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당신께서도 여전히 팍팍한 삶을 살고 있어 그렇게밖에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바랐던 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확인하는 일이었던 거 같다.


둘째로 나는 힘든 순간에 나를 방치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나선 일상이 무너지더라. 문 앞에 쓰레기는 쌓여가고 설거지도 쌓여가는 와중에 나는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멍 때리다가 잠드는 일을 반복했다. 밤에 과식을 하고 바로 잠드는 일이 반복되니 몸은 탈이 나고 무게는 늘고  잠을 설치는 밤이 계속되었다. 이 모든 건 나의 선택이었고 수렁에서 나오려는 일말의 행동도 하지 않은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커녕 내일, 아니 한 시간 뒤의 일도 막막하게만 느껴지고 평소에 하던 일도 힘이 들어 포기했다. 또 포기를 했다는 것이 나의 자아효능감을 떨어뜨렸고 매일 나는 이렇게 생각했더랬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구제불능이야.


혹여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일이 잘 풀려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나에게 잘해줄까?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생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성만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의 전원이 다 꺼진 시간들이었다. 퇴근 후에는 집에 박혀 나오지 않거나, 혼자 어두운 자전거 도로를 두 시간씩 걷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움직임이 적고 과식하는데 비해 운동량이 적어 점차 늘던 무게는 인생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외모에 자신이 떨어지니 다시 남들 앞에 서고 싶지 않아 지고 그로 인해 다시 집에 처박히는 악순환은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인복이 타고난 것 같다.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가까운 사람부터 새로 만난 사람까지, 때로는 이 사람이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싶은 스쳐간 인연들까지 힘이 닿아 그나마 나은 방향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뜬금없지만 모두에게 감사한다.


지난주부터 회복하려고 비로소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기억에 남는 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와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지인들의 말들이다.


걱정되는 바가 하나 있다면 그간 불행을 전시하며 위로를 바랐던 나의 행동들이 습관처럼 나오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불행을 내세워 상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우월감은 갖고 더 아파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행복하고 그들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앞으로도 힘든 일은 있을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힘듦을 극복하고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천하고 조금씩 바꿔나갈 것이다.


다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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