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월하지 않는 삶

뭐라도 쓰기 13일차

by 이요마

회사에서 월에 16만원씩 식비를 넣어준다. 이월되지 않는 시스템이라 대개 돈이 남는 말일에 돈을 털곤 한다. 이번달은 코로나의 여파 때문일까 착실하게 사용했고, 영업일 11일이 남았는데 7만 7천원뿐이다. 앞으로의 일상을 생각하면 집에가는 게 맞지만, 오늘은 제육볶음을 사가야해! 라는 생각이 퇴근 30분전부터 나의 정신을 지배해서 홀리듯 가게로 들어왔다.


쫄보 오브 쫄보인 나는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면 제육을 사면 안된다는 자각을 했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매사 그런식이였다. 언제나 당장의 행복을 유예했고 미래에 닥칠 비상사태를 대비하고자 했다. 불안감은 덜 수 있었지만 미래에는 또 미래의 미래를 대비해야했기에 즐거움은 끊임없이 이월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계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도 아닌데 궁상을 떠는 내가 싫어서 눈 딱 감고 2만 8천원 어치 중 사이즈를 질렀다. 이건 비단 제육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돈이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 무서움을 얼른 떨쳐내고 오늘의 행복 파이를 키워 가야지. 이월했던 행복감은 나ㅡ중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기회에 잡아봐야 큰 의미가 없더라.


사실 재작년 여름 보성에서 해본 일이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2천원이라는 녹차아이스크림 가격이 비싸서 용돈을 만지작 거리다가 포기했던 일이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도록 그때 유예한 아이스크림은 잊히지 않더라. 그래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여름에 보성에 찾아갔다. 순전히 녹차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그날은 38도 였고, 땡볕 아래에서 대한다원을 한 바퀴돌고 기념품샵으로 가서 녹차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15년을 지나 만난 녹차아이스크림의 맛은 어땠느냐? 녹차맛이 났다. 그뿐이었다. 그때 지를 걸 하며 마음의 짐처럼 담아둘 그런 맛은 아니였던 것이다. 허무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때 아낀 2천원은 기억도 안나게 사라졌다는 것을. 내가 오늘의 즐거움을 미래로 이월하다간 평생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뭔 제육볶음 하나 사기를 구구절절 설명이 많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장의 행복을 위해 후회하더라도 지르는 일이 쉽지 않다. 내가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더라도 말이다.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쾌락을 좇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오늘이 행복해지는 방향의 선택을 하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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