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티미한 것과 명확한 것

뭐라도 쓰다보니 30번째

by 이요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명확한 일은 얼마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목표대로 삶을 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계획은 통제 가능한 영역을 확보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사실 눈앞에 산적한 생존의 문제를 하루하루 쳐내기도 바쁘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그때 그때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에 나오는 비전 설정이라는 말이 왜 필요한 지는 길지 않지만 살아보니 조금 알 것 같다. 눈 앞에 작은 빛이라도 보여야 그걸 따라 앞으로라도 나아갈 수는 있다. 그런 것 하나 설정되어있지 않다면, '맞춰가는 삶'은 계속된다.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에 최적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견디며 버티는 게 나의 최선이라 생각해왔다. 주어진 환경과 계급을 바꾸긴 어렵고, 누군가는 평생 닿아볼 일 없는 수많은 경우들을 견디어내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는 이런 것도 안 하면서...'라고 말하기 위해 스스로를 불행한 이로 포장했고 그것에서 내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만끽했던 것 같다. 이 느낌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살기어려웠을 것 같다.


허나 그 알량하게 전시된 가난은 나를 가두는 틀이 되었다. 무리한다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가난한 나를 공고화하면서 포기해버렸다. 그 경험들이 주는 행복보다 잠깐의 희열을 위해 충당해야할 돈을 만드는 일을 먼저 생각하며 지레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군데군데 빈 경험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돈 안드는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나는 또래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공동의 감각에서 할말이 없어 입을 닫는 사람이 되었다. 해본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난에 최적화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누구도 내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다고 말해주지 않았고 벗어나야한다고 조언하지도 않았다. 다만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뒤늦게 내가 잘못 생각하며 살았구나 깨달았다. 그나마 부모님이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재산인 교육자본이 있었기에 인지할 수 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선뜻 해보거나, 자신을 정의하거나, 자기주장을 하는 일이 두렵다. 리스크가 있는 일에는 응당 견뎌내야할 책임이 있다.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면, 다 망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면 저지르기 쉬운 일도 망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배여있으면 주저하게 된다. 허나 이때 해보는 것과 관두는 것은 사람의 삶의 질의 차이를 벌린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마음이 건강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주는 에너지와 안정감은 주변도 편안하게 한다. 허나 열등감과 결핍의 에너지는 불안감과 약간의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차이는 변화를 쉬이 받아들이고 실패에 대한 회복탄력성의 여부일 게다.


때문에 자신감 있게 선이 굵은 메시지를 쏟아내는 이들은 자신의 위치와 행동거지를 인식하며 계획을 따라 가고자하는 곳으로 간다. 그렇지 않은 치들은 티미한 태도로 견주어보고 덜 리스크가 있는 곳, 덜 최악인 곳으로 움직이며 원하는 곳이 아닌 원하지 않는 곳에서 멀어지는 것을 택하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차선과 차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지를 남기며 투미하게 구는 태도를 버리기에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명확하게는 어렵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가보고 싶어졌다. 원망과 슬픔과 고민이 가득한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 지금의 알량함을 인정한다. 다만 언젠가는 나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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