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를 가두는 것들
뭐라도 쓰기 41번째
목표를 세우고 투입하는 시간보다는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 이를테면 가족, 타인, 돈 걱정을 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요즘인 것 같다. 해야하는 것들 속에서 좋아하는 것 하나 없이 무탈하게 죽어가는 기분이다.
갑자기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지인의 지인 이야기였다. 프리랜스 노동자였던 그는 자유로워보였다. 하루하루 벌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고 자신의 취향으로 자신을 가꿀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멋있었고, 여유있는 말씨도 부러웠다. 그와는 딱 한번 보았을 뿐이었고, 이후에는 만난 적도 연락한적도 없다.
얼마 지나 다시 그 지인을 만나게 되어, 나는 딱 한번 마주친 그는 잘지내느냐고 물었고, 그가 해외 유학을 고민하더라는 근황을 알게되었다. 부끄럽게도 마음 속에 가시가 돋히는 모먼트가 온 것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였던 그는 나인 투 식스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미워졌고, 깎아내리고 싶어졌다. 지인에게 내 낯빛을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상 묻지도 그를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착한척을 하며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더랬다.
버튼을 누르면 반응이 오는 것처럼 돈 걱정 없는 세계, 제한 없이 자유를 선택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시가 돋는다. 이런 내가 싫고, 미래를 위해 내가 지금이라도 선택을 바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야지 머리로는 생각해도, 다시금 당장의 행복도 기쁨도 이월하고, 언제 올 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유예하는 것을 택한다. 막상 자유의 시간이 와도 아무 것도 택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다.
돈 걱정, 관계 걱정, 타인의 평가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나를 이루는 현재가 나를 가두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매순간 생각해야하고, 매순간 견디고, 매순간 도망치고싶은 마음이며, 역설적으로 매순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선택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피해자에 두고 싶은게 아닐까 싶다.
성정에 있는 고집과 가치관, 신념을 내려놓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고싶은 곳도 발전하고 싶거나 나아가고 싶은 것도 그리고싶은 미래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을 만족하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현재를 버텨낼 좋은 추억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절망스럽고 때로 조증이 와서 일을 왕창 벌이다가도 다시 우울의 바이브로 침잠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정정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기보다는 돈을 버는 일상생활은 견디는 영역이기에 힘들지만 보내고, 미래를 도모하는 무언가와 현재를 즐겁게하는 무언가를 못한다는 말이다.(정말 직장까지 관두고 기꺼이 휴식하는 이들을 보면 또 가시돋힌 마음이, 팔자가 늘어졌네. 단절될 돈과 여유도 있으니 말이야. 하고 만다.)
이 미운 마음에서 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떨쳐내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트리거가 눌려 갑자기 바닥으로 내려가는 마음을 붙잡고 생각해본다.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로 돌릴 수는 없을까. 사랑의 에너지로 돌릴 수는 없을까. 긍정의 에너지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고민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나의 지금도 꽤 괜찮은 상황인 것도 맞지만, 왜 자꾸 -하면 하는 단서를 남겨두는지 모르겠다. 마치 그 조건을 못넘으면 부적격, 불합격인 것처럼 말이다. 견디는 데 익숙해지는 동시에 나를 계속 평가하고 학대하는 이상한 루틴을 깨고 싶다. 이 만성 피로와 어긋난 마음을 그만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