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통찰 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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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도 좀 쉽게 가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위 글을 썼었더랬다. 지금이라고 드라마틱하게 그 생각이 바뀐건 아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시간들이 길어져서 다시 푸념글을 쓰게 되었다. 전 글의 요지는 하 진짜 언제까지 노력해야되냐. 노력해서 간신히 남들 하는만큼 도착하면 그들은 내가 오는 동안 또 저만치 가있고, 또 멀어지고 이 갭을 메우는 걸 언제까지 해야하나. 나는 인제 못한다. 노력 안해! 하는 쌉소리였다.
저 글 이후로 한달이 지났고, 나는 노력 안하고 편하게 살고있느냐고? 아니다. 정량적인 노력을 투여해 조금 더 나은 무언가가 되었냐고? 그것도 아니다. 그냥 계속 누워있고... 누워있고... 또 누워있다가 잠만 늘었다. 그럼 나는 더 행복해졌는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자기혐오만 더 늘어갔다.
라고 자아비판을 이어가려다가 내가 지난달 했던 일을 되짚어보니 마냥 놀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 다만 이것저것 하느라 한가지도 돋보이게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저 노력하기 싫은 마음들이라는 글도 결국은 자아비판을 통한 빌드업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디폴트값은 다르다. 고로 가만히 두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도 다 다를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울'이 장착된 사람이고, '우울'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우울'의 방향으로 끌고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구라도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만, 프로세스 설정이 잘못되면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또한 말로는 행복이나 더 나은 사람, 성공을 지향하지만 스스로 에너지를 깎아먹으며 '아, 나는 불행해야하는데 이렇게 살면 행복해져!' 하며 나쁜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최초로는 뭐 하나 집중할 수 없는 노이즈가 많은 환경, 잘못된 환경 세팅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에너지의 분산, 투입대비 나오지 않는 효율에서의 좌절, 나의 비효율과 타인의 퍼포먼스를 비교, 열등감과 자괴감, 질투심, 그런 삿된 마음을 품는 나에 대한 자기혐오, 나는 쓰레기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라고 말하는 자아비판.
문득 들었던 그 의심이 30년 남짓 나의 발목을 잡아온 메카니즘때문이라고는 처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은 어디서부터 잘못 된걸까. 시작은 목표도 효율도 없는 막연한 노력에서 지친 모먼트였고, 이전 글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내면의 혼란을 야기한 트리거가 있었더랬다.
나는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원망이 짙다. 그리고 그와 관계는 이어가고 있지만 그를 믿거나 정서적인 유대를 갖기는 어렵다. 몇달에 한번 만나던 그를 코로나 핑계로 이리저리 피하다가 어쩔 수 없는 계기로 보게되었다. 알맹이 없는 스몰토크를 이어가다가 나는 '뭘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난 하고 싶은걸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더 후회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는 정색을 하며 '그런건 없다. 너 막상 하고 싶은 것도 없지 않느냐. 그건 그냥 원망일 뿐이고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났다.
내가 누구때문에 나의 20대가 사라졌는데, 하고 싶은 일을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는데 하는 말들이 입에 맴돌았지만 꺼내봐야 서로 기분만 상할 것 같아 관뒀다. 집에 와서 두고두고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노력 글을 쓰던 시점의 나는 마음이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내게 주어진 조건은 이렇지만 '그럼에도' 나은 선택을 해야했고, 내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포기해야하지만 '그럼에도' 플랜B로 가장 나은 걸 골라야했고, 그런 차선의 선택이 쌓여가면서 아예 선택지를 배제하기 시작했고, 그게 습관이 되어 나중엔 충분히 다 취할 수 있는 여력이 되어서도 아무 것도 고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 것일지언데. 당신께서는 무엇을 알기에 그렇게 말을 했을까. 또 그렇게 가족들의 시간을 앗아가고도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까. 되새겼다. 그는 그저 원망이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처럼 살지 않으리라. 그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지 않지는 않으리라. 되뇌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경제관념이 생겼고, 가능성보다는 내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현실감각이 생겼고, 빚을 만들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살아서 학자금 대출없이 대학을 마쳤다. 다만, 나를 무너지게 한 것은 내가 온힘을 다해서 10년에 걸쳐 만들어온 경제상황, 학력, 소셜포지션을 향한 투쟁은 누군가는 알 필요도 없고, 출발부터 주어진 포인트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였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할 게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으렴 소년! 맞는 말이다.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 그게 맞지 하면서 '그럼에도' 해야할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멘탈이 한번 주저앉고 나서는 늘어져서 원망이나 푸념만이 하고 싶어지는 거다. 니가 뭘 알고 떠드느냐고.
근데 더 열받는 건 이렇게 주저앉아 있어봐야 스스로 고립만 되고 더 망가지는 자기혐오의 루프에 빠질뿐 회복이 되거나 나아지는 것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굴 원망하든, 출발점에 서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했든 상관없다. 현재의 나의 프로세스가 불행으로 가고 있다면 원인을 제거하고, 환경을 개선해서 좋은 방향으로 풀릴 수 있게 해야되지 않겠는가. 역설적으로 다시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한때 글쓰는 이요마입니다. 따위로 나를 소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대한 자의식에 눌려있을 때였고, 나를 포장할만한 백그라운드가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 같은 포지션이 가난해도 빛나보여서 했던 것 같다. 몇년차 직장인이 된 후에는 나를 소개하지 않는다. 그냥 회사다녀요 ㅎ 그뿐이다. 이유는? 내가 내 글에 대한 자신감도 없거니와 나에 방점을 찍고 싶지도 않고, 당신과 다를 바 없는 원오브 댐(one of them)이다라고 말하는 게 편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원오브 댐이고 싶어하는가. 예전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겸양의 표현이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보내는 일상을 보면 점점 스스로를 들러리로 만드는 행동들도 나를 채워가고 있는 것 같다. 프로세스의 시작은 목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부터. 너무 길어지니 이건 파트투로 좀 더 고민을 하고 이어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