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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12. 2022

회사를 그만두고 알게 된 것_항상성 1편

우울증으로 퇴사를 하고의 근황

계단은 내 속도대로 걸어야 한다.

계단이다.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듯 계단을 오르는 데에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뻔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이 말이 요즘에서야 와닿는다. 앞서 달려가는 사람을 뒤쫓아 뛸 필요도, 아래 서있는 사람을 내려보며 비교할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계단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속도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게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선택을 포기한 것이었다. 죽을 만큼 힘든 것도 아니었다. 잘못되고 있다는 것, 힘에 부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견딜 만은 했으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이 또한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갈 줄 알았다.


사실 우울증도 예상은 했다. 병원을 가지 않았을 뿐이고, 언젠가는 병명으로 확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근데 막상 진단서의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라는 병명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인생을 방치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망쳐놓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감정 같은 건 따로 없었다. 아 그냥 망했구나 싶었다.


한 달의 병가와 일주일의 출근과 퇴사처리 그리고 다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첫 한 달은 잠만 잤다.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계속해서 잠이 왔다. 그렇게 자다가 일어나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내가 있었다. 그런 내가 싫어 다시 약을 먹고 잠을 잤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잠자고, 병원 가고, 상담받고, 소설 수업 들으러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일.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쳐있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번아웃 일까. 내가 뭘 얼마나 했다고 우울증일까. 나 같은 게 왜 엄살일까.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나를 비난했다. 쉬는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마저도 포기해버렸다. 그냥 잠이나 자자. 뭐 어쩌겠어. 하며 지금의 고통을 피해보려 했다. 끝까지 뭐라도 되겠지 같은 막연한 긍정은 나오지 않았다.


잠의 굴레에 빠진 나날을 헤쳐 나온 건 우습게도 스티커였다. 소설 수업을 듣는 날, 생각보다 일찍 역에 도착해서 문구점에 들렀다. (상) 스티커가 있어서 노트와 함께 샀다. (상)을 받아본 게 언제인가 생각하며, 내가 나를 비난하기만 할게 아니라, 나를 위해 상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동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상) 스티커를 하나씩 주기로 했다. 남의 시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고 봐야 했으니까. 오늘은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구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구나, 밀린 설거지를 했구나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나는 스스로를 격려했다. 이렇게 칭찬에 굶주린 사람이었나 생각하면서 스티커를 채워나갔다. 30개가 되면 프린터를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모으다가 어느덧 정신을 차리니 스티커 없이도 매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어있더라.


스티커의 힘을 받아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사는 동네가 외지기도 하고 버스도 잘 안 와서 차를 타고 다니다가 끝도 없이 오르는 기름값의 압박으로 그마저도 잘 안 갔기에, 나의 활동 동선은 극도로 작아진 상태였다. 하필이면 장마기간이었고 자전거를 탄지 2일 차엔 강풍주의보가 있었다. 그날 뒤에서 나오는 차를 피하며 코너를 돌다가 진흙에 바퀴가 밀려 자빠지며 오른 무릎이 까졌다. 아팠다. 뜨거웠다. 끈적거렸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는 무릎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자전거를 세워 가려던 카페에 갔다. 29살에 때늦게 자전거를 배우고 나서 3년 만에 처음으로 자빠져 다친 것인데 외려 기분이 좋았다. 아프구나. 아직 내가 감각이 살아있구나. 내가 아직은 살아있구나 싶었다.


2주가 지나고 어제 두 번째로 자빠졌다. 택배를 부칠 겸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얼굴에 갑자기 거미줄이 걸려 급브레이크를 잡았고, 이제 거의다 아물락 말락 한 그 오른 무릎으로 또 착지를 했다. 피가 철철 났다. 전보다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다리를 찔룩 거리며 돈까스집에 가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자전거를 끌고 돌아왔다. 자빠져서 살아있다는 느낌보다 기분이 나빠하는 일이 원래의 나와 가까웠다. 나는 내 기분이 전보다는 더 원래의 마음 쪽으로 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건 기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분은 매일 좋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기분의 고저는 어느 중간 레벨,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가 갈라질 터다. 잠을 자던 시간들의 나는 기분이 없었다. 기분이 없는 기분으로 매일을 흘려보냈다. (상) 스티커를 붙이던 시기의 나는 기분이 다운된 사람이었다. 강제로 무언가 끌어낼 외부 동기가 필요했다. 자전거를 타다 자빠진 시기에 이르러서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어제는 기분의 중간값이 다시 돌아옴을 느꼈다.


무언가가 과하거나 부족하기보다는 항상 일정한 단계로 유지되는 것. 기분에도 항상성은 필요하고 인간은 생각보다 기분에 의해 삶이 크게 좌우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억지 텐션으로 만들 수 없는 그런 모먼트가 오면 계단을 오르듯 따라오지 않는 나를 기다려줘야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시간이 주는 회복감이 이런 거구나. 쫓기듯 살 필요는 없었구나. 늦되게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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