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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20. 2022

회사를 그만두고 알게 된 것_항상성 2편

매일 나가서 무언가를 도모하기


에스컬레이터다. 일정한 속도로 사람들을 오르내리게 한다. 핵심은 ‘일정한 속도’가 아닐까 싶다. 일정한 기분의 중요성을 우울증을 통해 알게 되고, 나는 항상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성이 있는가. 내게는 규칙적인 무언가가 있는가. 생활과 멘탈이 무너진 이후로 내 삶에서 어떠한 규칙성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매일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하루 종일 누워서 유튜브보고 자는 반복 행동만 있었을 뿐,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만드는 행동은 아니었다. 비효율적인, 비생산적인 시간 역시 내게는 필요했고 그 시간을 지난 지금은 다시 루틴, 아니 루틴에 가까운 규칙적인 행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게 일은 언제나 디폴트였다. 대학을 다닐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퇴근 후 쉴 때도 언제나 일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에서 생각하면 아웃풋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밑빠진 독에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친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곳이 주던 체계들이 내 인생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를테면 출퇴근 시간과 점심 시간. 최적화된 시간의 분배보다는 여유롭게 쓸 수 있겠지만, 의식하지 않고 무절제한 백수모먼트로 시간을 낭비하니 하루, 일주일이 한 없이 망가져가는 게 보였다. 휴가도 한달 열심히 일하고 일주일 놀러가면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매 순간을 놀고 있으면 어느 순간 노는 게 죄스럽더라.


나는 노는 것 = 죄악이라는 프레임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쉬고 싶으니까 쉬는 거고, 놀고 싶으니까 노는 거지! 말은 하면서도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스스로를 못 쉬게 만든다는 걸 요즘에서 깨달았다. 하루 아침에 놀땐 놀고 쉴땐 쉬어!로 바꿀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여태 살아온 것처럼 불편하게 놀되, 내 기분을 불편하지 않게 올리는 일을 하면서 놀자고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래서 매일 10시~11시가 되면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카페로 나선다. 책을 들고 나와 읽거나 노트북을 들고 나와 소설을 쓴다. 물론 나름의 목표와 목적이 있긴하지만 막연한 낭비보다는 조금 나은 시간 활용이 주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퍽 도움이 되더라. 내가 그렇게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아직은 세상에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깝다. 아웃풋을 내야한다는 강박, 데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나를 채워가는 인풋을 늘리는 방향으로 시간을 쓰니 여전히 불안하고 강박적이지만, 충만해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도 결국은 매일 카페로 나서는 일. 에스컬레이터처럼 일정한 속도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기쁨인 것 같다.


20대에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떄는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같은 글을 쓰고 싶어했던 것 같다. 화르륵 하고 불타사라지는 임팩트 있는 글. 하지만 사회생활을 5년하고 30대가 되어 돌아보았을 때 진짜 광기는 매일 마라톤 뛰고, 마감 펑크 없고, 부업으로 번역도 하는 하루키라는 인터넷에서 본 말을 이제는 공감한다. 매일 꾸준히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며 아웃풋을 내는 일은 고된 일이다. 고독하고 괴롭고 때로 좌절이 드는 일일 것이다. 백지 앞에는 나 혼자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립의 순간에서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간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그 고민의 시간을 갈무리 했을 게다. 이젠 체력이 딸려서 며칠 밤새면서 화르륵 글을 쓸 수도 없고, 남은 것이라곤 지난하게 견디면서 묵묵하게 내 길 가는 속도 뿐인 나이기에, 그 힘을 믿고 오늘도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탈 생각이다. 오전 시간대에는 애석하게도 한 글자도 쓰지 못했고, 구상도 막혀버렸지만 다시 선선히 가야겠지. 막음날 내 외로운 혼을 건지기 위해서 말이다.(*김영랑 <독을 차고> 마지막행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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