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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an 04. 2023

[2022] 제2회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K픽션 아카이브 - 단편·중편소설 | 이요마

제2회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 이신주 外 / 2022

*도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SF로 피어난 새로운 상상력들 | 이요마


SF를 접한 건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영화들부터였겠지만, 책으로 접한 건 사실 몇 년 안 된다. 표지가 예뻐서 구매했던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기점으로 오 재밌네? 싶어서 뒤늦게 한 권, 두 권 읽어가는 중에 가깝다. 그래서 듀나, 배명훈, 김보영, 정세랑 같은 한국SF사의 흐름을 선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이미 많은 책을 낸 작가들이기에 이제와서 따라갈 용기도 잘 안 난다.


제로 베이스이기에 오히려 <제2회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은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작가의 맥락이나 정보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재미'로만 진검승부하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어딘가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5명의 작가가 5개의 색채로 그려낸 이 책은 읽는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다음 작품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들었다.



먼저, 대상을 수상한 이신주 작가의 <내 뒤편의 북소리>

블랙홀로부터 자신들의 행성을 구하러 우주로 떠났던 세 명의 우주비행사 이야기다. 내게 SF진입 장벽이 있다면 과학의 어려움(?)일진데, 엄청 어렵지는 않게 소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가 잘 그려져서 좋았다. 관찰자로 나온 촉수외계인 듀오의 역할은 꼭 필요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뭐야... 싶다가 종국에는 극적인 모먼트를 만들어줘서 아...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싶던 포인트.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는 '넌 이미 죽어있다.'가 왜 떠오르던지... 여러모로 단편의 맛을 최고로 살렸다 생각하는 이야기였다. 


백사혜 작가의 <궤적 잇기>

따스한 SF소설을 잘 쓰면 이렇게 나오겠구나 싶었다. 약간은 김초엽 작가 풍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한(온색에 가까운) 느낌도 들었다. 트라피스트-1f 행성에 거주하는 '나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이 행성에 오래 살면 눈이 멀어버린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시각의 제약을 각성으로 장애와 적응에 대한 부분을 풀어낸 방법이나, 화성 출신 화가 어머니가 느꼈을 묘한 감정선이 자식인 '나'의 입장에서 풀어진 점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다. '이해'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는 이야기.


이경 작가의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내 원픽이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싶더니만 글빨이 죽여준다. 유팜이라는 영아 젖병 소독기 시스템의 AI가 레전드 오브 타잔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모양으로 나타나 함께 공동육아(?)를 한다는 이야기. 구병모 작가의 <어떤 자장가>라는 소설이 떠오르는, 아기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고통이 그로테스크나 히스테릭으로 가지 않고, 유머로 독자들을 박살냈다는 점에서 최고였다. 그래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누구야? 하고 검색했더니 대머리 아저씨가 나오는 건 무엇...


육선민 작가의 <사어들의 세계>

쓰레기 행성 Tr48의 청소부로 일하는 '나'와 생명이 없어야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꽃을 지키던 동료 '림버'의 이야기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무리 약을 치고 치워버려도 생명의 가능성은 0.0000001%라도 감지된다는 부분은 어딘가 위로가 되는 포인트였다. 어딘가 다른 작품들과 톤이 달랐다고 해야할까. 문장때문일까. 결말때문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읽어오던 순문학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존 프럼 작가의 <신의 소스코드>

다큐멘터리 대본을 보듯 짜여진 소설로, 지구가 사실은 시뮬레이션된 세계라는 걸 알게되고, 주인공 안나 한이 여러 차원을 모험하면 겪은 일대기를 담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구라를 정말 잘 친다. 이게 뭔데? 싶다가 점진적으로 빨려들어가 정신차리면 납득을 하면서 읽고 있다. 무한한 연결, 끝없이 이어지는 세계선의 굴레에서 인간의 생은 참 보잘 것 없으면서도, 참 위대하다는 오묘한 모먼트를 주더라. 중간중간 끼어있는 유머들도 꽤 재밌게 읽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과학기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문과인 나 같은)독자들도 이해할만한 정보와 서사, 인물들의 감정선까지도 SF라 재밌는게 아니라, 잘 쓴 소설이라 재밌는 독서경험이었다. 소설의 본질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확인이 아닌 확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하고,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공감도 하고, 반감도 사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재미가 픽션이 주는 찐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번 수상작품집은 그걸 완전히 충족시켜주었다.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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