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 절망도 없는 자조의 세계 | 이요마
도서관 신착코너에 있기에 읽게된 책.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았던 소설집이었다. 뒷표지에 쓰인 허희 평론가는 최선을 다해 평론을 했고, 내용보다는 구조에 집중한 평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악당>에 실린 8편의 소설은 비슷비슷한 감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희망도 절망도 없는' 세계를 그린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리 사는 세상 꼬라지가 이렇지 뭐.' 하고 툭 뱉는 체념섞인 결말에서 김이 빠지기도 하고, 그렇지 이게 현실세계지 싶은 마음도 드는 묘한 감정이 들더라.
가장 눈에 들어온 작품은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였다. 지렁이로 시작해 윤회를 통해 인간에까지 이르지만,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인생은 운빨이다! 근데, 그 운이 나한테는 오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감성이 전반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 <다리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의 경우는 고아인 주인공이 겪는 비참한 인생을 담았는데, 안 될 놈은 결국 안 된다는 느낌의 씁쓸함이 묻어났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가 밝힌 바처럼 '고민이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캐릭터의 평면성, 단순한 생각, 체념의 결말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다른 지점이 조금 걸렸다.
굳이 분류하면 이 소설들은 김동식 작가류의 짧지만 풍자적이고, 서민적이면서 임팩트가 있는 이야기 부류일턴데, 뒤통수를 탁 치는 반전은 생각보다 적고, 풍자에 포인트가 있던 것 같다. 그 풍자가 자조로 간다는 점에서 읽고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한UFO교>의 '나' <개새끼를 다루는 법>의 '나'는 스테레오타입 속의 80년대생 아저씨 느낌이었다. 종교단체에 빠지면서 본인도 사기를 당하는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장면이나, 버스에서 여성에게 말 걸어보려다가 상사 개새끼 때문에 틀어진다는 소재는 공감해야할지 재밌어 해야할지 애매한 지점에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악당>이나 <노인-88012346> 같은 경우는 그나마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준다는 점에서 재밌게 읽었지만,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과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는 몰입되지 않은 아저씨 화자에게 정을 주기가 좀 어려웠다. 여러모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와중에 소설집 한 권으로 묶일 정도의 자신만의 바이브(체념과 자조)를 만든 점에서는 좋았지만, 아쉬운 건 아쉽다.
이 작가님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읽어는 볼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과 비슷하다면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