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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31. 2016

3. 봄이 온다(2)

학곰군의 웰메이드 소설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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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4/2015080402397.html)



봄이 온다(2)


시팔. 오늘 하고 싶은 것 참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아.

(봄이 온다(1)에 이어서  https://brunch.co.kr/@hakgome/42)



그의 입에서 나온 수강생들의 기행은 상식선에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오히려 이재명씨는 일말의 논리를 갖고 있기에 양호한 편이었다.


A 공무원학원 학사팀은 수강생들의 별의별 창의적인 컴플레인에 노출되어있었다.


오팀장의 표현으로 ‘유도리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제 1원칙으로 삼고 학원 측과 수강생 측의 양방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 학사팀의 존재 이유 중 한 가지 였다. 


김철용씨도 '유도리 있게' 많은 사람을 상대했다. 


자습공간 확보나 스터디 자료제공 같은 합리적인 요청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기꺼이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늘 몇몇의 소수로부터 시작되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잘못’임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김철용씨는 그들의 행동을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공무원 수험생활을 선택했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은근히 ‘당신은 공부를 해야 하고, 컴플레인으로 나와 보내는 이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식으로 포장하며 에둘러서 그들을 교화시켰다.


그런 김철용씨도 가끔씩은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조금의 관심도 없던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장점을 설명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매뉴얼대로 응대를 했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많은 변수가 생겼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들의 기행 때문에 김철용씨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니다.


결정적 계기는 어제 오후에 있던 9급 공무원 입시설명회였다.


그는 설명회가 끝난 후 설명회 참석자들을 상담을 해야 했기에 2층 대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마련된 상담석에 앉아있었다.


시작 시간인 2시가 다가올수록 설명회 참석자들은 불어났다.


설명회 시작 15분 전이 되자 300명이 들어가는 대강의실은 이미 가득 찼지만 참석자들의 입장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상담에 필요한 브로셔를 챙기려고 잠시 강의실을 나왔다.


3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계단에 늘어선 줄이 보였다.


학원 밖까지 이어진 줄, 그리고 2층 문에 붙은 종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만석입니다. 3층 영상실로.’ 




김철용씨는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공무원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가면서 설명회를 들으러 온단 말인가.


누구보다 공무원에 대해 잘 알지만 공무원은 되어 본적이 없는 김철용씨였다.




1퍼센트. 1퍼센트입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하기 쉽습니까? 

1퍼센트가 평균적인 공무원 시험 합격률입니다. 굉장히 어렵죠.

근데 우리 사회를 보면 공무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연금개혁 할때보면 공무원한테 뭐하러 연금을 많이주느냐
내 세금가지고 너희 철밥통 아니냐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식이 공무원되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욕하지만 내 자식은 되고 싶고...

경쟁률은 1퍼센트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굉장히 좋은 직업이다. 누구나 되고 싶은 직업이다. 이거죠.



국어를 가르치는 장우환 교수가 첫 연사였다. 김철용씨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욕을 할 때 하더라도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대강의실을 가득 매우고도 영상실을 가득채울 정도로 차고 넘치니 말이다.




요즘은 삼포 세대라 하죠. 구직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합니다. 그 출발은 무엇인가 하면 구직입니다.

직업적 안정성이 없기 때문에 결혼을 주저하게 되고 결혼도 안하고 애기를 날 수는 없는거죠.

여러분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이 자리에 오신것이죠.




김철용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삼포. 누가 지은 이름인지 말을 하면 힘이 빠지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무엇을 포기해야만 하는 세대이자 그것을 극복하고자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세대.


김철용씨도 스물 여덟살 공무원학원 학사팀 사원이 남들도 포기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차여차 구직은 했다고 하지만 이 일을 한다고 앞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썩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 수는 있었던 어제처럼, 오늘도 반복될 것이었다. 내일도 오늘같이 다시 어제처럼 말이다.




철용씨가 미래에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다.


그는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은 바로 다음 주부터 주말에 치킨 집에가서 서빙을 했다. 


등록금을 모으겠다거나 여행을 가겠다는 큰 포부는 없었다. 다만 용돈이나 해서 쓸 생각이었다. 


그는 꾸준히 일했다. 치킨 서빙으로 시작해서 카페, 장난감 판촉, 동네 학원 선생, 대학교 도서관 근로장학생에 작은 회사의 인턴까지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면 대학을 다니면서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 모든 경험들이 인생의 약은 되었을는지 몰라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였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목돈이 된 것도 아니요, 남들 다 간다는 유럽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구직도 아르바이트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꿈이나 인생의 목표, 자아실현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단어들은 서점에나 있는 이상적인 말들일 뿐이라고 김철용씨는 생각했다.




여러분이 1퍼센트가 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미래를 보는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가 과거의 흔적들입니다.

어제의 여러분이 오늘의 여러분을 만드는 겁니다.
1퍼센트가 되려면 1퍼센트처럼 행동하고 노력해야합니다.

1년만 좋은 선생님과 좋은 수험서를 갖고 A 공무원 학원에서
1퍼센트처럼 공부하십시오.

1년을 투자해서 30년 40년을 1퍼센트처럼 사십시오.




 ‘지랄하네.’



철용씨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그의 과거는 끊임없는 아르바이트로 얼룩져있다. 


그래서 그의 지금이 주말도 명절도 없고 야근도 잦은 공무원학원 학사팀 직원인 것인가. 


김철용씨가 주말마다 치킨을 나르고 장난감을 팔 때 클럽이나 다니던 대학 친구 B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럼 김철용씨에게 너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1퍼센트의 마음가짐이 없었어! 라고 말해야하는 것인가. 


그는 씁쓸했다.


자신의 인생은 저수지 밑바닥에 깔린 돌맹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쁘고 고운 돌이야 누군가 집어들어 장식품이든 물수제비를 하든 나름대로 하나의 의미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신과 같은 돌들은 평생을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살아다가 간다고 말이다.


학원 프로그램의 소개까지 마치고는 마이크가 사회를 보는 영어 과목의 이대석 교수에게 넘어갔다.


이교수는 장교수가 말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직업안정성이나 벌이, 나이 같은 것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깁니다. 지금 여러분의 등급은 몇 등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수험생. 18등급입니다.

1퍼센트처럼 우리 학원에서 1년만 참고 견뎌서 9급 공무원에 합격하면

여러분은 9급 공무원, 즉 2등급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습니다."




제 딴엔 우스갯소리라고 던진 한 마디를 듣고 김철용씨는 옆에 있는 후배 사원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참고 견딘다는 말이 역겨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철용씨는 매달 열렸고 수차례나 겪었던 설명회를 오늘따라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그럭저럭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설명회는 앞으로도 계속 있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을 부추기는 데 자신이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게다가 참석자들을 학원에 등록시키기 위해서 김철용씨 자신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도 2등급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해야하는 것이 별안간에 혐오스러웠다.


그 말 자체도 그 말을 반복해서 하는 자신도 말이다.


철용씨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로 아래는 육교가 걸려있는 사차선 도로가, 조금 뒤에는 지하철 1호선이, 그 뒤에는 한강과 육삼빌딩이 보였다.




‘시팔. 오늘 하고 싶은 것 참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아.’




철용씨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담배를 피우러 나온 낯이 익은 수강생이 두어명 있어서 애써 참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하고싶은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랄 게 없었다.




어릴 때는 분명히 있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린 것일까.


나는 돈이 없으니까, 나는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던 ‘하고 싶은 일’은 끝없이 다음으로 이월되어 지금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수능만 끝나면, 제대만 하면, 대학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이라는 ‘조건’은 끝없이 새로운 조건을 끝말잇기처럼 이어갔다.


이대로 있는다면 대리만 단다면이나 결혼만 하면, 아이만 생기면,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아이가 대학만 졸업하면, 아이가 취직만 하면으로 이어져 ‘그래 내 인생을 살겠어!’라고 생각할 때는 칠순잔치를 할 것이 분명했다.


김철용씨는 억울했다.


자신의 인생은 끌려만 다니다가 끝장날 것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육삼빌딩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며 어릴 때는 그렇게 높아보이던 건물이 작게만 느껴졌다.





문득 처음 육삼빌딩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가 초등학생 때였다.


여의도에서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놓고 가신 서류봉투를 전해드리러 어머니의 손을 잡고 회사에 갔다가 육삼빌딩에 들렀다.


표를 끊고 올라간 전망대. 서울이 발  밑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어린 김철용씨에게는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그때는 하늘을 날고도 싶었고 구름을 먹어보고 싶었고 하다 못해 육삼빌딩 창문을 닦고도 싶었지 하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띄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김철용씨는 참석자들을 상담했다.


그리고 공무원의 가치에 대해 조리있게 설파해서 참석자 2명을 그 자리에서 종합반에 등록시킬 수 있었다.


김철용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머릿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하는 때늦은 고민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퇴근을 하고 그는 집에 가는 길에 혼자 포장마차에 들렸다.


닭똥집 한 접시에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철용씨는 스물 여덟해 만에 찾아온 사춘기가 당혹스러웠다.


중, 고등학생 때부터 적성검사나 직업검사를 숱하게 받아왔지만 모든 수치가 고르게 나오던 철용씨의 검사지에 추천직업으로 등장하는 것은 늘 ‘공무원’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절대적인 안정은 아니었다.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되고 싶었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 되든지 ‘의미’가 되고 싶었다.


일은 하지만 여전히 어제와 같은 자신이 싫었고, 자신이 떠나면 누군가 대체를 할 수 있는 학사팀이라는 자리도 싫었다.


그렇지만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는 생각없이 일을 그만두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나이였다.


구직난에 공무원 설명회에 수백명이 몰리는 판국에 재취업은 공무원 시험준비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맥주를 두 잔째 비우고 잔을 내려놓는 순간 철용씨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대로 살면 평생을 끌려만 다니다가 죽을 거야.
서른이 되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모험을 해보자.’



만취한 김철용씨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박았다.


술은 못해도 몸은 유연한 김철용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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