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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n 05. 2023

편지: 이 이야기들은 당신의 발견에서 시작됩니다

단편소설 연재 인트로


그렇습니다. 외람되지만 부탁을 드리고자 당신께 편지를 보낸 것이 접니다.     


단 한 줄,     


‘이 이야기들은 당신의 발견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내용을 확인했을 당신의 표정이 상상이 됩니다. ‘뭔데? 이야기들은 뭐고 발견은 뭔데?’ 하며 의아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처음 그 편지를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으니 말입니다.     


이 편지를 누가 보낸 것일지, 어떤 의도로 보냈을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편지가 왔을지 따져보았죠. 소득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편지를 책상 한 편에 밀어두고 그것의 존재를 잊어버릴 즈음, 어느 새벽, 저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오래된 마을을 지나고 있었지요. 손전등이나 등불, 하다못해 라이터 하나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이 어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었죠. 주변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삼각 지붕의 집들이 몇 채 있었어요. 그곳이 버려진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 건, 어느 집 하나에도 한 줄기의 빛이나 연기, 냄새 같은 것이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았고, 발 컨디션도 괜찮아 충분히 걸을만 했죠. 그렇게 한 발, 한 발, 두리번거리며 집들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번개인가 싶었어요. 어두운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기에, 비가 오지 않아도 천둥 번개가 치는 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번쩍- 하고 사라져야할 번개의 섬광은 제가 한참 눈을 감았다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빛기둥은 하늘의 신께서 인간들에게 손을 내밀듯이 지상의 있는 것들을 서서히 훑으며 이동했습니다. 마치 무엇이라도 찾고 있는 것처럼요. 처음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밝은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이내 시야가 차차 트였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나는 새싹, 꽃, 다람쥐와 고라니, 공룡, 화성, 마왕과 말로는 외모를 표현하기 어려운 외계인까지도요. 그것들은 빛이 머무는 동안만 잠시 눈에 보였다가,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빛이 어느덧 제 앞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요. 저는 기꺼이 두 팔을 벌려 빛을 맞이했고 그 안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보았지만, 지금은 보았다는 사실만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 또한 사람인지라 잠에서 깨는 순간 꿈속의 내용이 다 휘발되어 버리더군요. 하지만 그 빛을 온몸으로 만끽했을 때, 그것이 저를 지켜볼 때 저는 한 없이 충만해졌고, 감사를 느꼈고, 열렬히 사랑을 하겠노라 다짐을 했던 감각만은 여전합니다.     


일어나서도 한동안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복기하다가 문득 받았던 단 한 줄의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당신의 발견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구나. ‘그것’은 당신이고, 당신께서 나를 지켜봐줄 때 새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구나. 그렇게 살아 숨 쉬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상력과 그러한 가능성을 세상에 내보일 용기와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단숨에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편지를 씁니다.     


빛날 화(華), 덮을 개(蓋)     


세상에는 빛나고 가치있는 것들이 발견도 되지 못한 채 덮여있습니다. 온 천지에 말이에요. 저는 제가 당신께 받은 영광처럼, 빛이 닿지 않은 곳에 있던 이상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밝은 곳으로 꺼내올 생각입니다. 환한 곳에서 그것들이 발견될 수 있게, 응시를 통해 의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의 시선으로 빛을 내려주세요. 그 발견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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