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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Sep 28. 2023

6. '어쩔 수 없이', 되풀이는 없을 거야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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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쩔 수 없이', 되풀이는 없을 거야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미국 청소년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다 잠들어서인지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땅을 한없이 운전하는 꿈을 꿨다. 씻고 나와서 간단히 아침을 사먹고 다시 묵호역으로 향했다. 무엇을 써야 할까. 딜런 칼슨은 어디로 가야할까. 머릿속에는 온통 써야할 이야기로 가득했다.


전날 역에서 투썸플레이스까지 가는 등산로(?)에 호되게 당했기에, 이번에는 어제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 보아둔 바닷길로 선선히 걸어갔다. 아침 바다의 윤슬이 나와 딜런의 여정을 응원하는 느낌, 왠지 지금 뭐라도 쓰면 매스터피스가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제는 그렇게도 멀기만 하던 거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저 어제 한 번 가봤을 뿐인데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꽤나 안락했다. 평평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내가 다시 몇 달 전으로 돌아간다면,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겪어온 모든 과정을 한 번 겪어봤다면 달랐을까?


글쎄... 다른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몰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더라도 주저하다가 그냥 살던 대로 살았을 것 같다. 설령 그게 나를 파괴하는 방향일지어도 말이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 의사결정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늘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을 생각하면서 살다보니 나 스스로에 대해 존재보다는 역할을, 사랑보다는 쓸모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가족을 포함한)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고, 입에 풀칠할 만큼 돈도 벌 수는 있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는 사라졌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해본 일이 없었고, 뒤늦게 '나'를 찾으려니 젊을 때는 괜찮겠지만 나이들어서 그러면 추하다는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철이 든다는 말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란 뜻은 아니었는데, 나는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의 편의에 맞춰서 나를 누르며 살았다. 10대와 20대를 놓치고 나서야 뒤늦게 '나는 누구지? 왜 살지?'라는 질문을 던질 타이밍이 왔지만, 그마저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눌러버렸다. 그렇게 참고, 양보하고, 유보하고, 결정을 내일로 이월하면서 버티다가 한계가 왔다. 반응은 몸의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때의 나는 계속 나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전보다 나은 회사를 다니고, 상식적인 동료들이 있고, 연봉도 올랐고, 가족의 관계도 괜찮았고, 막연하지만 미래도 도모할 수 있는데... 왜? 왜 갑자기?'

애석하지만 갑자기가 아니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고른 '나를 포기한' 선택들 매순간이 전부 위기의 순간이었다. 위기 상황에도 내가 나를 방치하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퇴사를 하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 하고 싶은대로 살면 가족에게 폐를 끼치니까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가면 나만 행복하기 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말들이지만, 과거의 나에겐 타당한 이유였다. 이제와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기 위해' 나를 피해자로 구성하고 싶은 마음처럼도 보인다. 스스로에게 '너만하면 괜찮은 거야' 가스라이팅을 걸며 살았지만 그게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의심이 든다. 그때는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만 살아왔으니 필연적으로 나쁜 선택들이 쌓였을 게다. 나를 해하는 자충수를 거듭 두다보니 나는 판을 엎지 않고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체크메이트에 놓여버렸다. 다 내 불찰이었다. 그래서 더 억울했던 것 같다.


공백의 시간을 가지며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남의 시선'이나 다른 사람의 커리어 트랙 비교하며 나를 공격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나이까지 취직 안 되면 인생 망해. 이 나이까지 결혼 못하면 안 돼. 정신 차려야해. 하면서 남과 나를 견줄수록 나는 부적격이 된다. 퇴사하고 놀고 있으니 낙오자이기도 하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르면서 무차별적으로 부적격이니 낙오자니 비난을 하다보면, 나 자신이 점점 더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그런 악순환을 하지는 말자는 생각에서 한 다짐이었다.


내가 눈에 익은 길에서 편안함을 느끼듯,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은 기본값으로 세팅된 '어쩔 수 없이'를 할 때 편안함을 느낄 게다. 살던 대로, 별 생각 없이 살면 필연적으로 나 스스로 무덤을 파고 체크메이트 당하는 판을 만들 게 분명했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런 '어쩔 수 없는' 인생을 되풀이하지는 않고 싶었다.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거스르다보면 새로운 길이 나서 과거로 돌아가진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투썸플레이스가 나타났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제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가, 누가 뭐라한 것도 아닌데 '이러면 안 되지.' 속으로 되뇌며 자리를 옮겼다. 단 한 테이블 차이인데도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되풀이 하지 않겠어. 되풀이 하지 않겠어. 반복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인제 수년간 되풀이해온 또다른 '어쩔 수 없이' 미뤄온 과제. 소설 쓰기를 할 타이밍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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