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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Sep 20. 2023

5.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까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5.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까


한껏 고양된 마음으로 도착한 까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2층에 올라가니 바다가 내려보이는 통창이 나타났다. 바깥에 앉기에는 조금 쌀쌀한 날씨기도 했고, 콘센트도 써야했기에 앉았을 때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받아와 테이블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어 아래아 한글을 켰다. 

자...

자...! 이제부터 쓰기만 하면 돼!


그리고 10분 정도를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화면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며 가득 채워온 경이감,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점멸하는 커서창을 보면서 점차 꺼져만 갔다.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까.'


목적도, 목표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나온 동해 글쓰기 캠프였기에 당연하게도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예전에 쓰던 글들을 열어보며 기웃거렸다. 벌써 7~8년 전에 아이디어를 짜놓고 언젠간 완성해야지. 완성해야지. 마음먹었던 원고 하나. 그 원고를 살려보겠다고 작년에 소설창작수업을 들을 때 합평용으로 썼던 200자 원고지 70매 분량(A4 기준 10pt 10~12장 남짓)의 단편소설 하나. 그 다음 수업에서 이어쓴 +70매 하나. 얼마 쓰다가 관두고, 또 쓰다가 관둔 조각 원고 십여개.


완결짓지 못한 미완성품들이 노트북에는 한가득있었다. 문득 매듭짓지도 못할 거면서 벌여왔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그래도 시작은 빨라서, 시도는 열심히 했으니까 지금의 나까지 올 수 있었겠지 생각하면서 그 글들을 찬찬히 보았다. 대학생 때 쓰던 글과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글과 이직하며 번아웃에 찌들었을 때의 글과 퇴사 직전의 히스테릭한 글로 시간에 따라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작품을 내겠노라 공언하던 치기어린 시절과 견주어보면 나는 상당히 쪼그라져 있었다. 30대가 되면 마음의 고민이 사라질 거라고, 내 하고 싶은대로 세상을 재밌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던 막연한 기대는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이제는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없듯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글을 싸지를 수(?) 있던 그때처럼 활력있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감상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지나온 시간도 그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기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시계를 돌릴 수 있다면 같은 가정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살던대로 괴롭게 살지 말고, 앞으로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글쎄. 일단 뭐라도 써볼까.' 

막연하게 무얼 써야지! 마음먹기엔 내 의지도 목표의식도 흐릿했기에 '엽서시 문학공모' 사이트에 접속해 가까운 시일에 마감하는 문학 공모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내 조건에 딱 맞는 '청소년 소설 공모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완성 원고'도 받는 공모전. 일정 분량까지만 완성한다면 응모조건이 되었기에 완성고를 내는 것보다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14년 지금은 없어진 대학문학상에 장편소설을 응모한 이후 딱 9년만에 도전이었다. 매년 11월이 되어 신춘문에 공고가 올라오면,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놓치고는 스스로를 자책한 게 벌써 9년이었다. 시간이 많은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 분량을 체크하고나선 소설 수업에 냈던 70매 원고 2개를 꺼내 다시 꼼꼼히 읽었다. 잘 고쳐서, 잘 써서 1등하자는 마음은 없었다. 기한 내에 제출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물론 괴발개발로 써서 낸 원고라도 사람 마음이 당선이 되었을까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며 마음 졸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최초의 마음가짐은 그런 것이었다.

그때 쓰던 소설은 미국의 20대 미스터리 유튜버 '딜런 칼슨'이 '다이빙 엘'이라는 미스터리 스팟에서 괴담에 휘말린다는 오묘한 내용이었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시기에 쓰던 글이라 그런지 어딘가 침울하고,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응모하는 공모가 청소년문학이다보니 주인공의 연령대를 조정하고, 좀 더 모험과 소동이 가득한 밝은 이야기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글을 쓰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등장인물의 나의 마음이 묻는다. '딜런 칼슨'은 아팠다. 긴 터널에서 어떻게 나올 줄 몰라 헤매고 있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앞으로도 그렇게 터널 속에 나 자신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다. 여태껏 '살던 대로' 살지 않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그 인물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네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청소년으로 연령을 내린 것까진 좋았는데, 미국 청소년은 어떻게 생활하지...? 미국 고등학생이 운전면허를 몇살부터 따는 지, 어떤 SNS를 하고, 뭐하고 노는 지를 찾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영화 <헝거 게임>을 1편부터 보기 시작했다. 쓰더라도 뭘 알아야 쓸 것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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