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Dec 26. 2023

주간 이요마 인풋 노트 2023 결산

2023.01~2023.12

주간 이요마 인풋 노트 2023 결산


인트로: 2023, 1년 소회


주간 이요마 인풋 노트가 어느새 72편을 돌파했다. 72주, 1년 하고도 20주의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였다. 할 수 있던 것이 무인 카페에 나가 책을 읽는 것 밖에 없던 시절에 시작한 작은 습관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새삼 감개무량하다. 


바닥인줄 알았던 2021년, 그 아래 지하실이 끝인 줄 알았던 2022년, 그것도 끝이 아니었구나 깨닫고 놓아버렸던 2023년까지 어떻게 보낸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3년이었다. 특히 올해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보니 '아 삶이 계획대로 흐르진 않구나.'를 넘어서 '안 되는 일은 어떻게서든 엎어지게 되어 있고, 될 일은 내 멱살을 잡고서라도 되게 만드는 구나.' 하는 체념의 깨달음(?)을 얻은 시기였다. 그냥 매일 하던 거 열심히 하고, 충만하게 살다보면 기회는 올 테고, 혹 기대하던 것이 잘 안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끄덕이니 마음이 외려 편해지더라.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온 지금은 외려 내년 2024년이 기대된다. '이제 내리막이 끝났겠지?'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사는 방법을 장착했기에 불확실한 미래가 막 두렵지는 않다. 막연한 낙관, 그냥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기로 했다.


더불어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나는 실시간 데이터보다 누적 데이터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기민하게 트렌드에 맞는 세상의 변화를 포착하는 일보다는, 내가 믿는 것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이어서 아카이빙하고 그것에서 맥락을 만드는 게 내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듯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을 '왜 난 못하지. 난 왜 안 되지. 난 쓰레기야.' 하는 자기비난과 채찍질로 채워왔더랬는데, 그마저도 인정하고 나니 내 강점이 발휘되는 영역에서 내 쓸모를 보이고 싶어졌다. 물론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나를 단련했다면 결점마저도 강점으로 극복해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냥 안 맞는 길도 있나보구나. 인정해버렸다.


52주간 작성한 주간 인풋 노트를 돌아보니 올해 나는 132권의 책과 36편의 영화, 22개의 시리즈(드라마, 애니메이션, 다큐, 예능 등)를 끝까지 봤다. 이번주 추가분을 고려하면 +2~3 정도 추가되겠지만, 지금 숫자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숫자다. 올해 읽었던 베스트 책 5, 베스트 영화 1, 베스트 시리즈 1, 그리고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하면서 한 해 인풋 노트 기록을 마감해보려 한다.


2023 이요마 선정 베스트 책 5

* 인풋 노트에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선정 이유는 추후 추가한 내용.


1. <AKIRA 1~6>, 오토모 가쓰히로, 세미콜론, 2013


선정 이유: 상상력을 폭발시킨다는 건 이런 거구나,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곱씹게 만든, 여러모로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사람들이 왜 아키라 아키라 하는지 뒤늦게 알게되었다.

(다들 애니메이션말고 만화책 보라는 이유도 대충은 알거 같다)


2030년대 네오도쿄의 사이퍼펑크 서사는 1980년대의 상상이라고 하기엔 지금도 세련되다. 거대한 힘, 힘을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반복되는 잘못, 그런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원시원하고 속도감 있게 나아가는 연출, 인물들의 생동감까지 하나하나 다 좋았다.


인물들 중에선 빌런 역할을 맡은, 데쓰오가 눈에 들어왔다. 열등감과 열패감, 어느 리뷰어는 가네다를 전쟁 전의 이성적이고 당당한 일본 / 데쓰오를 패전 후 감정적이고 열등감에 쩔어있는 일본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은유는 둘째치더라도 참 안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본 캐릭터였다.


가네다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지만 초 알파메일로 인기도 사랑도 리더십도 다 가진 인물이지만, 보잘 것 없기에 힘도 없고 덩치도 작은 데쓰오는 비교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가 그렇게 아키라를 대각으로 옹립해 대도쿄제국의 권좌에 오르려 한 것도, 끝까지 가오리의 사랑을 갈구한 것도 끝도 없는 결핍에서 나온 것일 테다. 입체적인 인물은 이런 것이구나 배워가는 모먼트.


단순히 달을 뿌시고(?), 인공위성 레이저가 네오도쿄를 때려부신다고 해서 청소년 주인공들이 가진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어느 정도는 독자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는 예상의 궤도 밖으로 벗어나는 임팩트를 주며, 또 어느 정도는 희망을 기대하게 만드는 여지가 있기에 빨려들어가듯이 강한 힘에 떠밀려 결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목적지(결말의 임팩트)를 확실하게 두고 그곳을 향해 바이크를 타고 함께 달려가는 느낌을 받은 이야기. 극장판도 봐야지.




2-1. <빛과 영원의 시계방>, 김희선, 허블, 2023

2-2. <골든 에이지>, 김희선, 문학동네, 2019


선정 이유: 김희선이라는 작가가 내 취향의 주파수가 맞는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두 권을 경유하면서 최애작가가 되었기에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는 없었다. 


<빛과 영원의 시계방>

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올해 읽은 한국소설 중에 베스트다. 아마 작년과 내년을 합쳐도 가장 주파수가 맞았던 소설집일듯. 인용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감흥이 문장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게 무슨 말인고하면, 김희선 작가의 소설은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 단위로 기억되는 매혹적인 글이란 소리다.


정보라 작가의 추천사에 적혔듯 '상상과 현실의 씨실과 날실을 솜씨 좋게 엮어내는 장인'이자, '부드럽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무서울 정도로 매혹적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할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문장'에 턱 걸려서 천천히 넘어가는 것보다 한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문장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이야기에 빠져 정신차리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는 경험이야말로 소설이 주는 재미이자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전에 없던 상상력을 보이거나, 충격적인 모먼트를 주진 않는다. 하지만, 독서를 하는 동안은 영혼이 빠져나가 작가가 직조한 세계에 머물다오는 몰입감을 준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잠깐 어디 다녀오는 이상한 기분.


왜 그러한가. <공의 기원>이후로 팬이 되어서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도 재밌게 읽으며, 무엇이 나와 주파수가 맞는가... 생각해보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던 것 같다.


하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 없는 인물들의 아무도 모를 이야기 혹은 유명한 인물의 아무도 모를 뒷이야기를 다루는 것.

특히 그들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으로 털어내기 보다는, 그를 알고 싶어하는 인물의 조사나 주변인들의 회상, 편지 등으로 간접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인상착의를 맞춰가는 방식이 참 좋았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 없는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지 않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코드에 맞는 것 같다.


둘째는, 상상력의 편안한 분위기인 것 같다.

이를테면 세계를 구하기 위한 미션 같은 거창한 것보다는, 한 번 들어볼래? 하고 주머니에서 쓰윽 꺼내는 상상력 한 줌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감정적인 교류나 연대 지지까지 나아기지 않더라도, 잘 모르는 Unknown의 인물을 알아가려하고 이해하려하는 화자가 주는 따스함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은, 이미지와 스토리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의 초반 장면, 드릴 세워놓고 머리를 들이박으러 뛰어가는 노인처럼 강렬한 이미지 단위로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공간 서점>에서 열차(?)에 올라탄 아버지라거나, <오리진>의 지하 통로에서 '그것'을 발견한 신부, <끝없는 우편배달부>의 만남씬.(스포라 자세히는 못쓴다) 같은 순간들. 장면으로 기억되는 건 다른 소설에서도 하는 경험이지만 결이 다르다고 느낀건, 그 순간의 감정보다는 '사건'에 기반한 장면들이라 더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멈춰서 문장을 음미하기보다는 쭉쭉쭉 나가면서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하고 나아가는 매력은 스토리가 주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볼 책이다. 간만에 읽는 재미를 주었던 고마운 책.


<골든 에이지>


이 소설들에서 김희선은 파묻힌 비밀과 '뒷이야기'들을 드러내는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이 다시금 파묻히고 가라앉는 모습까지를 김희선은 쓴다.

- 해설: 가라앉은, 작은 것들의 기원사 中


________


✅이요마 노트


읽다보면 나와 주파수가 일치하는 작가가 있다. 내게는 김희선 작가가 그렇다.

"아니 무슨 뻥을 이렇게 쳐?" 싶은 터무니없지만 빨려들어가는, 이야기 본연의 재미에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그는 구사한다.

올해의 베스트 소설집을 고르라면 <빛과 영원의 시계방>을, 올해 읽은 베스트 소설집을 고르라면(구간 포함) <골든 에이지>를 고를 것 같다. 그만큼 거의 모든 단편들이 내 취향과 재미코드에 부합했다.


음모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불확실성의 영역, 이야기만 무성한 영역을 노동, 난민, 애도, 기억 같은 메시지로 끌고오는 그의 이야기는 읽을 땐 재밌고, 읽고 나선 여운이 남는다. 꼬치를 빼먹 듯 한 편 씩 읽어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덕분에 준비하던 공모전도 '내가 뭐라고' 하면서 포기할 뻔 할 때마다, 그래 나도 이런 걸 써봐야지. 다시 생각하면서 제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작 <라면의 황제>, <무한의 책>도 이어서 읽을 예정!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를 고르라면 <골든 에이지>일 것 같다.

애도의 방식은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김희선 작가다운 방식으로 그날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그날이 무엇인지는 비밀.


<스테판, 진실 혹은 거짓>, <공의 기원>, <18인의 노인들>도 좋았다. 해설에서 설명한 파묻힌 비밀과 뒷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일터인데, 그 야사가 팩트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뒷면을 이해해보려는 마음, 상상으로 공백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주는 재미와 감정이 참 좋았다.


여러모로 고마웠던 책.




3. <중쇄 찍는 법>, 박지혜, 유유, 2023


선정 이유: 전복성, 충분성, 미래지향성이라는 키워드는 잊지 말고 새겨야할 키워드. 내가 이렇게 멋진걸 보여줄게~ 하고 툭 던지는게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태도가 콘텐츠 제작자에게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앞서 언급한 최연희 편집자의 말처럼 '이 책을 한국 사회에 소개해 보고 싶어, 나라도 소개해야 돼'라는 소명의식을 가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소명의식을 독자가 알아줄 리 없다고 오만하게 예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형식과 과정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해 나가야 한다. 적어도 멀리깊이는 이 이야기를 누가, 왜 ,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에서는 게으른 적이 없다.


________

✅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 이 책을 읽고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에 리뷰를 남겼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runch.co.kr/@@TaC/553

이변이 없다면 '이요마 선정 올해의 책 5(공신력없음)'에 한 자리 차지할 책. 한 줄 버릴 것이 없던 책이었다.


출판 기획편집자로서 또한 출판사 대표로서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절절하게 담겨있다. 단순히 이러면 베스트셀러 된다!는 식의 허울좋은 방법론이 아니라, '중쇄의 조건'에 대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라는 것이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오오라를 가진 책이었다.


전복성, 충분성, 미래지향성의 황금비부터 출판은 제조업이기에 장인의 마음으로 출판에 임해야한다는 마인드, 모든 과정에서 독자를 생각하며 만드는 태도까지 직업인으로서 이정도 해야 중쇄를 70% 달성할 수 있구나(?) 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지만, 구매해서 두고두고 다시 읽을 예정이다.


콘텐츠 기획에 대해서 실마리를 트이게 하는(?) 힌트를 준 책. 강추.




4. <물방울>, 메도루마 슌, 문학동네, 2012


선정 이유: 가장 개인적인 서사로부터 재미와 몰입과 공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단편집. 특히 <물방울>과 <바람 소리>는 정말 좋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자기 죽음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봤지만 결국은 공허함만 느꼈다. 누구나 그 공허함을 응시하기 두려워 유서나 편지 쓰는 일에 열중했다. 후지이는 '천황을 위해'라는 말을 입에 담는 놈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았다. 들이받을 대상이 없는 채 증폭돼가는 증오심. 그것이 후지이의 내부 여기저기를 갉아먹었다.

'무의미한 것 같지 않느냐고? 뭘 새삼스럽게.'


________

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소감을 말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창의성은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극대화시킬 때 드러나는 것. <물방울>은 그런면에서 최근에 읽은 단편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메도루마 슌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오키나와 이야기'를 하는 작가다. <물방울>에는 온통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뿐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전부 다르다. 오키나와는 그저 그의 문학을 묶는 밑그림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게다.


림프부종에서 생명의 물 - 오키나와 전투 -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플로우라거나 오키나와 전쟁다큐에서 어린이의 모험 - 과거에 풍장을 했던 기억 -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가미가제 출격을 하기 전날, 개인의 고뇌 -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플로우는 여러겹의 레이어가 겹쳐질 때 비로소 빛을 보는 의미와 재미 모두 잡은 이야기였다. 거기에 환상성을 곁들이니 이거다 싶더라.


오키나와 북리뷰는 그냥 저냥이었는데, 형식 자체가 몰입도를 방해해서 그런 것 같다. 한 세계를 만든다거나, 이야기를 짤 때 큰 이야기 아래 브런치로 뻗어나갈 이야기를 구상할 때 이 방식을 쓰면 좋겠다 싶었다.


역사책의 역사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감춘다. 개개인의 이야기는 발굴되고,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그런 면에서 메도루마 슌의 작업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무명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세련된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5-1. <스토너>, 존 윌리엄스, RHK, 2015

5-2. <검은 꽃>, 김영하, 복복서가, 2020


선정 이유: 막상 하나를 빼자니 아쉬워서 5에 2권을 골랐다. (사실상 베스트7) <스토너>는 고민이 많던 시기에 해답은 아니더라도 힌트를 내어주었기에, <검은 꽃>은 오랜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으로부터 다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 작은 소일거리를 주었기에 선정했다.



<스토너>


넌 무엇을 기대했나?


________

✅이요마 노트


▼ 이 책을 읽고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에 리뷰를 남겼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runch.co.kr/@hakgome/540


제대로 살고 있는게 맞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들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문득 <스토너>라는 책이 떠올랐다.

작년에 우울증으로 회사를 관둘지 고민할 때 들었던 소설 수업에는 고등학생 수강생 둘이 있었다. 두 친구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책으로 <스토너>를 꼽았다.


어떤 연상 작용으로 그 기억에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친구의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왜 추천했는지, 그 책의 무엇이 그를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는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이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책을 잡았다.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은 잔잔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평온 속에 소용돌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생의 순간들에서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


짧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간 스티브 잡스나 미국의 근현대사를 우연히 관통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화려한 불꽃을 내뿜지는 않았지만, 고요한 곳에 놓인 양초의 불빛처럼 제 자리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화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은 늘 흔들린다. 설령 스토너처럼 단조로워 보이는 삶일지어도 말이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직장 생활하다가 관두고 소설 쓰기를 하는 사람의 아웃풋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마는 어렴풋이 나는 스티브 잡스 급 임팩트를 바랐던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질문과 고민,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토너》는 내게는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을 남에게 아웃소싱하곤 한다. 대개는 인생의 성과를 낸 사람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모범답안 삼아 그대로 따라하곤 한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내게 무엇을 기대했나. 그 기대는 나로부터 온 것인가. 나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분명 내 인생인데 나는 왜 물어보지 않았나. 정해진 길로, 남들이 닦아놓은 길로만 가려했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비로소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아직 초안이기에 사는 동안 고쳐나갈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Q.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A. 된다.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을 터다. 다만 내가 나를 긍정하는 걸 포기하진 말자.


<검은 꽃>


그건 몰랐군요. 그렇지만 나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정의 말에 요시다가 웃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요시다는 이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대통령궁으로 걸어들어갔다.

________

✅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 이 책을 읽고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에 리뷰를 남겼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runch.co.kr/@hakgome/524


김영하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면 나는 <검은 꽃>을 고를 것 같다.

1905년 제물포항에서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배타고 가는 여정부터,

메마른 선인장의 땅 유카탄 반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움직임.

2-3부로 넘어가며 상상도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결말부까지

읽는 재미는 이런 거구나. 이게 소설이구나. 몇번이고 감탄하면서 읽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같은 초기작의 세련됨과는 조금 다른, 묵직하면서도 빨려들어가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


2023 이요마 선정 베스트 영화

1. <소나티네>(1993)


선정 이유: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이라는 말처럼,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색으로 온전히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고, 그게 참 멋있었다.


✅ 이요마 노트(스포 있음)

<기쿠지로의 여름>의 어이! 코노야로 바가야로! 아저씨를 생각하고 켰는데, 생각보다 강렬하고 여운이 있던 영화.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한거 같은데, 그것들이 많이 좋았다고 해야하나...


조직에서 밀리고, 말하자면 정리대상이 된 야쿠자 무라카와가 오키나와로 내려와 보내는 시간들에 대한 영화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는데 슬픔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기타노 다케시 아저씨의 뚱한 표정에 모든 게 다 있는 느낌이었다. 허무함, 공허함, 그것을 넘어서는 없음의 경지.


영화에는 배경음악 없이 정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그 여백이 참 좋았다. 채워진 것보다 더 빽빽하게 내안에 메워주는 그런 모먼트였다. 사실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좋았던 영화. <하나비>도 조만간 볼 예정.


*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가 있었다.


2023 이요마 선정 베스트 시리즈

1. <최강야구 시즌 1, 2>(2022~23)


선정 이유: 은퇴한 아저씨들 야구하는데 이렇게 몰입할 일인가 싶은데, 이승엽 감독체제에선 '그래도 열심히 하자!'였는데, 김성근 감독 투입 후부터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리얼로 'WIN or NOTHING'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존폐를 걸고 촬영일이 아닌 날까지 매일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 + 아직도 직접 펑고를 치는 김성근 감독의 항상성(?) 그리고 어쩌다보니 최종전에 존폐가 걸린 시즌 2의 마지막까지. 잃어버렸던 야구에 대한 애정을 끓어올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애석하게도 최강야구는 보는데 프로야구는 안 보는 게 흠)

다만, 김성근식 선수운용. 이를테면 혹사에 가까운 이대은-신재영 선수 출전이라거나, 박재욱 선수에 밀려 이홍구 선수가 시즌 내내 아예 선발 출장이 없던 케이스는 보면서 안타까웠던 모먼트.


※이요마 노트(스포있음!)

요 몇 년 동안 거의 유일하게 챙겨본 예능이었다. 고등, 대학 같은 아마야구부터 독립리그까지 발견되어야 할 선수들을 조명하고, 은퇴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던 프로그램.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겠지만, 내 원픽은 VS 인하대전 김선우 선수의 8년 만의 복귀전이었다. 베어스 한참 응원할때 좋아했던 선수를 여기서 다시 볼 때의 감동이란... 여운이 깊었던 경기.


내년에도 해설 뿐만아니라 선수로 더 기용(?) 되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시즌 2를 기대해본다.


2023 이요마가 벌인 일들


1. 꾸준한 리뷰_이요마 리뷰 아카이브 시즌 1 마감

https://brunch.co.kr/brunchbook/eyomareview

https://brunch.co.kr/@hakgome/564


: 인풋노트에 그치지 않고 완결된 글로 책리뷰를 했다. 30편으로 마감한 시즌 1은 절반은 뿌듯했고, 절반은 아쉬웠던 기록이다. 뿌듯한 것은 이젠 내 글 같은 건 못 쓸거라 생각하고 놓았던 시절을 극복하고, 다시 내 의견과 주장이 담긴 리뷰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내재적인 부분이었지만, 시작이 그런 이유다보니 기획이나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일단 써~로 시작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이 읽어야할 이유'를 주진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덕분에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를 드나들며 이런 저런 재밌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니 내게 준게 많았던 기획이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inputeyoma

인풋노트는 앞으로도 계속 쌓아갈 것이다.


2.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https://brunch.co.kr/magazine/favoritenothing

: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는데, 우울증세는 다시 올라오던 초가을 즈음에 쓴 에세이. 나와 같이 우울한 마음을 가진 사람,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다시 제 궤도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을 위해 쓴다고 시작은 했는데, 하소연과 자기 반성하는 일기처럼 되어서 호응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가장 마음이 약해졌던 시기를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이때의 마음은 겨울인 지금은 또 잊어버렸으니, 딱 그 시기에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으면 계속 이어 쓸 거다.


3. 화개

https://brunch.co.kr/@hakgome/480

: 환상소설 단편 연재를 밀리의 서재의 밀리로드를 통해 하려 했고, 메인에도 오르며 괜찮아보였는데... 이 시기에 될 것 같았던 장편소설 계약이 꼬이면서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방치하게 된 기획. 여력을 회복해서 2024년에는 다시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여전히 이 글의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2편의 작품이 있다.


3-1. 장편소설 계약 불발 + 재도전 예정.

: 창비X카카오 영어덜트 공모전 최종심에 초심자의 행운으로 올랐고, 출판사 컨택이 와서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할 기회가 있었다. 관심을 보이던 두 회사와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끌리다가 복합적인 이유로 양쪽 다 불발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그 원고를 고쳐 다른 공모전에 냈고 예심 탈락하면서 멘탈이 바사졌었다. 

지금은 다시 자기객관화를 하고 원고를 고쳤고, 출간기획서 + 참고자료를 작성해서 보내고 싶은 몇 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준비하고 있다. 한 주 남은 12월 안에 1차로 투고를 다 돌릴 예정. 올해 안에는 이 원고는 무조건 매조지 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계약-출간은 내가 통제할 영역이 아니니 보내놓고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4. 이요마는 무슨 일을 하는가

https://brunch.co.kr/magazine/eyomawork

: 햇수로 5년차에 접어든 엠디랩프레스 쪽으로 일이 들어와, 에디터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일을 했다. 몇몇 기업(아직 안 올라간 것 포함)과 협업을 할 기회가 있었고, 엠프티폴더스와 WRM에서 작지만 즐거웠던 워크숍 기회도 있었다. 내년에는 이 매거진에 더 많은 후기를 올릴 수 있도록, 재밌는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겠다.



아웃트로: 내년에는 무얼 할까


다사다난, 그럼에도 희망은 보았던 2023년. 기록을 돌아보면서 그래도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던 결산이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올해의 나는 빠져있는 구렁텅이에서 나오려고 온몸비틀기를 하기 바빴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자기반성과 일기형 콘텐츠는 만들 수 있었지만, 독자를 바라보는 선택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제 정신을 조금 차렸으니(?) 내년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졌다. 이 콘텐츠가 왜 사람들에게 필요할지. 어떤 의미와 감상을 줄지.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서 '읽을 만한', '볼만한'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러프하게 잡아본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은 세 가지다.

1. 소설가로 데뷔하기(공모전이든 투고든 어느 채널이든)

2. 글과 관련된 일로 안정적인 월 200만원 이상 생계유지비 벌기

3. 타협하지 않는 내 콘텐츠 만들기 + 콘텐츠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구체적인 세부 계획은 다이어리에 찬찬히 정리해볼 생각이다. 2024년 12월의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내년도 누적의 힘을 믿고 매일, 매주, 매월을 차곡차곡 모아가야지. 그렇게 내 자리를 만들어가야지. 한 해 동안 고생 많았다.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많아지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이요마 인풋노트_12월 4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