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2~08.18
이번주는 조금 늦었다
잘 준비해서 미래를 도모하자
모든 리뷰에는 스포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사람들은 말한다. 괜찮으니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그들은 솔직함에 집착한다. 진실하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상대가 품은 비밀이 자신을 괴롭힐까 경계해서다. 솔직함은 대부분 타인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해가 되기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낱낱이 고백함으로써 용서받거나 스스로가 떳떳해지기를 기대한다. 고백의 순간 진실은 박제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다. 서로를 바라본들 보이는 건 박제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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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결말이 명료하고 캐릭터 중심으로 쭉쭉 나가는 소설 위주로 읽다가, 오랜만에 강적을 만났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건지 몽롱해지면서 작품 안에 오래도록 머물게 되는 책. 《냉담》은 그런 책이었다. (반 정도는 흐린 눈으로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건 비밀)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가 궁금해서 에세이인줄 알았지만 소설이었던 부록, 무료 전자책으로 풀려있는 코멘터리 북(인터뷰 + 서평)까지 읽었는데 뭔가 알 듯 말 듯 확실치는 않다.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는 서평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알레고리와 비유가 많은 작품인 건 분명했다.
나는 《냉담》이 '명료한 증명'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나'의 냉담 또는 '증명하지 않는 나'에 대한 세상의 냉담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세상은 누구에게나 증명을 요구한다. 그 증명의 형태는 '결과'다. 당신의 결과물이 어떻습니까? 충분히 지금의 자리를 누릴 자격이 됩니까? 과거 행적은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결격이 있다면 나락이나 무관심을, 인증을 해내면 킹, 갓, 신 같은 수식어로 추앙한다. 다만 유명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살아온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내야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세상에 나온 책의 판매량으로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 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성적이며 교우관계며 다 증명들 뿐이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나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고, 사회인으로서도 결격에 가까운 인물이다. 결과적으론 말이다. 돈으로든 작품으로든 결과를 못내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 평가하곤 한다. 속된 말로 폐급, 부적응자, 낙오자 같은 말은 한 사람이 쌓아온 맥락도, 가치도, 과정도 싸그리 무시한채 오직 '증명 했는가'만을 판단한다. 그 평가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공교롭게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코로나로 추정되는 전염병의 시대다. 그저 확진이 되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고, 폭력적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까발려도 마땅한 세상이다. 왜? 결과적으로 병에 걸렸으니까. 그의 이동경로에는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다. 그저 확진자가 여기도, 저기도 많이 돌아다녔네. 혹시 나도 동선이 겹치나 하는 비인간적인 계산만이 남는다. 필요한 건? 내가 확진자가 아니라는 혐의를 벗기위한 증명 뿐이다.
1부의 '나'가 그녀에 천착한 까닭은 짐작이 된다. 명료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결과를 내지 않아도 그녀는 '나'를 받아준다. 그냥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가치 평가를 걷어내고,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 봐준다. 그때문에 '나'가 굴욕을 무릅쓰고 전직장에 찾아가 직장을 구하고, '죽음!'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저항하는 삶에 가까운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 모두가 그를 패배자로 낙인 찍어도, 나한텐 내 존재를 알아봐주는 존재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다.
사람들이 솔직함에 집착하고, 떳떳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증명하라'의 다른 표현이다. 네가 괜찮은 사람인지, 나와 어울릴만한 존재인지 견적을 내기 위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냥 증명될만한 자료들로 평가할 뿐이다. 내가 '솔직함'에 냉담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까봐야 돌아오는 건 존중과 이해가 아닌 편견 가득한 시선과 거리두기 뿐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세상이 '나'에게 허락한 공간은 그래봐야 계단 뿐이다. 2부의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그에게 허락된 곳도 도서관의 지하서고 뿐이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치워져야 하는 존재,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기를 바라는 전염병 바이러스 같은 존재. 누구도 그들에겐 관심이 없고,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들도 애써 증명하지 않는다. 구원을 바라거나, 이 굴레를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냥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세상에 자신을 내맡길 뿐이다. 삶은 버티는 것이 된다.
이 모습은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고립을 겪었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확진이 되면 격리 되고, 세상에서 잠시 지워버린다. 물론 그 고립의 순간에 나 자신과 마주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그냥 버티면서 불확실성 속에 괴로워했지. 치워진 존재로서 힘들어했지.
'나'와 그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참 냉담하기만 하다. 무시하고 배제하고 경멸하며 바이러스인양 분리한다. 왜? 그들에겐 결과가 없고, 불분명하고, 무엇하나 득이 될 게 없으니까. 근데 역으로 '나'와 그 또한 그런 세상에 냉담하다. 사회에 편입되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발버둥치며 명료하게 증명하지 않더라도 그냥 상시 코로나 펜데믹 초기 상황처럼 삶이 펼쳐진다. 불확실과 불분명에 머물며 아픈 상태로 머문다. 그래서 계속 약을 먹는 거겠지...
결말엔 1부의 그녀일지 2부의 나무일지 모를 이가 약을 먹이는 장면이 의미심장했다. 나를 온전히 봐줄거라 믿었던 존재,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맡길 수 있는 존재마저도 나를 교정하고 치유하려고 한다. 바이러스인양. 그건 당신의 쓸모를 빨리 증명하라는 재촉이기도 하고,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조같기도 하다. 그래서 참 묘하다.
중간에 놓친 부분도 많고, 내 역량의 문제로 모든 걸 해석하고 평가할 순 없었지만 읽고나서 더 오랫동안 생각하게 한 묘한 작품이었다. 다시 읽으려면 좀 마음은 단단히 먹고 잡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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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밤에 또 만납시다. 그러나,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내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ㅡ.
「좋은 소설을 쓰시오.」
벗은 진정으로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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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8월, 경성을 거닐던 모던 보이이자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골몰했던 구보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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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하면 기억나는 키워드는 '의식의 흐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뭔말을 하는 건데? 하면서... 읽다가 포기했던 작품이다. 근데 이 책을 읽다가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좀 들더라. 《구보의 구보》는 소전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전시 도록 + 박태원과 이상(하융)이 작품을 쓴 맥락, 소설 속 인물이 당대 어떤 장소였는지에 대한 맥락, 연구자의 해석, 당대 인물의 입장에서 쓴 에세이까지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탄탄하게 기획한 일종의 아카이빙 북이다.
리얼리즘과 카프가 꽉 잡고 있던 판에서 모-던하게 작품을 풀어낸다는 것. 상업성이 개입되려하면 단호하게 신문 연재도 중단할 수 있던 젊은 패기. 소설과 삽화, 월북 후엔 아동문학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활동했던 박태원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책. 올해가 가기 전에 구보 씨의 일일은 한 번 재도전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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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강인한 사람은 불편함과 괴로움을 피해 도망치지 않고, 몸으로 겪는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대책을 모색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괴로움을 헤치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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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실패할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데서 진짜 자신감이 나온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거짓 자아에 맞춰 최소한의 기준을 높여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자신의 실력을 파악한 후에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 도전하려는 과제의 난이도 그리고 자신이 지닌 약점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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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경험하는 현실대로 반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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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극에 맞서 싸우지 않고 그 경험을 정상적인 경험으로 수용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신호로 경험을 재인식할 수 있는 공간에 머문다면 앞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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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사람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릴 뿐 아니라 자신이 직면한 현실의 벽과 이를 뛰어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도 정확히 평가하는 냉철함을 지녔다. 이들은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맹목적으로 버티기보다 "포기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때는 새로운 관점에 서 목표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일에 다시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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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긴 예약끝에 빌려본 책. 강인함이라는 게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인내가 아니라, 감정과 연결되어있다는 개념이 재밌었다. 생각 이상으로 우리의 뇌는 감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강인한 사람은 불편함과 괴로움이라는 풍파 속에서도 상황을 과대/과소 평가 하지 않고, 미리 앞서 예측하거나 과거의 실패 사례에 빗대어 미리 좌절하지도 않은채 있는 그대로 현실을 수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자기 통제는 메타인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떨 때 약하고 강한지를 파악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마음,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부합하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 결국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힘들었던 순간도, 막막한 지금도 결국 내가 만든 세계다. 뇌가 현재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해 택한 결과들이 쌓여 만든 상상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내 상태를 직면하는 것만큼 지금 내게 필요한 것 없는 것 같다.
바이럴에 비해서는 아쉬웠던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생각하기보다 지금 내 마음과 상태를 파악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만은 와닿았던 책.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연재 다시 시작해서 조금씩 아껴서 보는 중!
: 주성치는 당구도 잘 쳐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한 4화에서 더 나아가질 않네...
: 첫 장면 연출 미쳤다.
: 싹 지우고 리뉴얼
실시간 인풋 기록은 아래 인스타에 하고 있다.
문장 밑줄 치고, 그때 든 감정/생각을 바로 기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