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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Dec 13. 2016

즉흥곡1

진심을 머금은 개소리 한 마당

  서울로 가는 두어시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문득 내년이면 스물 일곱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한없이 우울해졌다. 그래서 가수들이나 댄서들이 잼을 하듯이 나도 잼 있는 글이나 써볼까. 엠피쓰리의 랜덤재생목록에 손을 맡기고 이리로 저리로 흘러가볼까. 글 곳곳에 실시간으로 내 귀에 흘러들어가는 노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게다.(/로 노래구분)


  지금 재생되고 있는 음악은 라르크앙시엘의 driver's high다. 하필이면 외국노래로 시작이라니 이 글 순탄하게 갈 것 같지는 않다. 마침 운전자의 높이(!?)라는 제목이니 운전면허 이야기부터 꺼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저께 서랍을 정리하다가 운전면허증을 발견했다. 스물셋 청초한 얼굴의 내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면허증을 딸 때는 뭐라도 될 줄 알았다. 바다를 찾아서 파도를 찾아서 차를 몰고 어디든 훌쩍 갈 줄만 알았다. / 면허를 딴 계기는 따로 없다. 친구들이 다 따니까. 남자가 운전은 할 줄 알아야한다니까. 그래서 그냥 학원을 끊고 그냥 시험을 보고 그냥 땄다. 따지고보면 나의 인생은 방치된 면허증과 다를 바 없었다. 남들 하니까 그냥. 그냥. 꿈도 남들 꾸는 만큼. 다른 사람 보기에 후지지만 않다면 괜찮았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나의 삶의 이유들이 '남들이 하니까'나 '그냥'이 아니었다면?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꿈이 있어서 주변에서 만류를 해도 달콤한 꿈에서 날 깨우진 말아줘!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면 나아졌을까.  / 꿈이 있었다 한들 나는 무언가를 이거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이것을 사랑하니까 나는 신경 안 쓴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하면서 추진할만한 깡다구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저마다 썰 같은게 있지 않나. 짐캐리였나 아놀드 슈왈제네거였나 여하튼 한 유명배우는 백지수표에 큰 액수를 적어놓고 몇년안에 이 돈을 벌겠노라 다짐하며 매일 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지않는가. 아이고 나 는 산은 커녕 조팝나무 이팝나무가 뜨문뜨문 널부러진 뒷동산도 올라가지 않으니 성공할 일은 글렀다. / 그렇지만 이렇게 멍청하게 주저 앉아 있던 아웃풋이 스물둘의 얼굴을 바라보는 곧 스물일곱의 나라니 이래서는 안 되었다. 너무 한심하잖아! 이렇게 우물쭈물거리다간 금방 마흔이고 금방 칠십이고 금방 임종일 게다. Mr.애매모호 씨는 아무 것도 하진않으면서 찡얼거리다가 뭣도 아닌 인생을 사시고 사망했습니다. 라는 묘비명을 옥탑방 꼭대기 층에서 마주할 나의 영혼을 떠올리니 아무것도 안 하고 맞이하는 스물일곱이라는 단어의 부채감이 더욱 커졌다. / 일단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렇게 면허증 앞에서 추억을 되살리면 할수록 나란 존재는 점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 같았다. 마땅히 갈곳도 없었지만 일단 공원쪽으로 향했다. 밖은 추웠다. 하필이면 내가 걷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뒤통수가 아렸다. 본의 아니게 추진력이 생겨 걸음은 좀 더 가볍게. 걸음이라도 좀 더 가볍게 갈 수는 있었다. 봄처녀 제 오시는 봄이 그리웠다. 그러면서도 해가 넘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시린 겨울이 지나고 찾아오는 봄을 원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되돌려 올 해 봄이 되길 바랐다. 평소에 계절을 타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민감하게 겨울을 봄으로 돌리고 싶은 것은 지나간 여름과 가을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다가올 스물일곱 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 바람은 점점 세게 불었고 나도 휘청하고 몸이 흔들렸다. 바람이 그만 좀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나를 흔드는지. 너 때문에 나는 흔들려. 왜 자꾸 내 맘을 흔들어. 중얼거리며. 나도 알고 있었다. 흔들리는 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걸. 오늘도 이유도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머리도 안 감고 츄리닝에 후드티만 걸치고 나왔는데 얼굴은 벌개져서 울기까지 하니 안봐도 내 꼴은 가관일 것이다. 그래. 스물일곱이 뭐라고. 스물일곱에 뭐라도 해야 사는 건가. / 그래도 그만. 울지는 말자. 스물일곱에 돈을 못벌어도 남들만큼도 살아갈 순 없어도 그마저도 나니까. 자기연민에 빠지진 말자. T.T 이런 표정을 지으며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해서 그저 멍때리고 있는 나를 쪼지는 말자. 자기 연민에 빠져 찌질하게 앉아있지는 말자. 다짐을 하고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걸어간다. 콧노래라도 불러서 이 울적한 기분을 바꾸려는데 나도 몰래 눈물 날 것 같아 아닌 것 같아 내가 아닌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미 난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은 것일까.



도착을 했다. 쓰다보니까 시간이 훽훽훽! 내가 쓰고 싶은 방향으로 가다가도 어쩌면 내맘인데 내맘대로 할 수 없는 건 스스로 정한 규칙 때문이었다.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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