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맨홀_박지리

#2020s한국문학

by 이요마
8958286245_1.jpg 맨홀_박지리(2012)


0. '박지리'라는 장르의 문학

故박지리 작가의 작품을 읽고 '어떤 작품이었어?'라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난감해진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규격보다는 훨씬 넓은 독자에게 소구력이 있고, 장르를 규정하기에도 어느 한 분야로 좁혀 말할 수 없다. 그냥 '어, 박지리스러운 문학이었어.'라고 답할 수밖에. 한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레퍼런스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겹쳐 보이기 마련인데, 그의 작품은 묘하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한,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게 낯선 것은 아닌, 특이한 독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앞에 밑밥을 엄청 깔아 두어서 혹여 <맨홀>을 읽고 실망할까봐 걱정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도 당신이 읽기만 한다면 한순간 사라져 버릴 기우라고 생각한다. 흡입력 있는 전개와, 주인공의 끝없는 심연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맨홀 구멍에 빠져버릴 거라 자부할 수 있다.


1. 의인과 악인

'나'는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현장에서 사망한 어느 소방관의 아들이다. 집에는 그를 위한 감사패가 모셔져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 칭한다. 하지만 그런 의로움 뒤엔 그림자가 있었다. 의처증을 갖고 있던 아버지는 매일 '나'와 누나에게 엄마의 위치와 동선을 보고하게 했고, 이유를 만들어가며 엄마를 때렸다. 매일 벌어지는 폭력의 현장에서 도망쳐 있기 위해 '나'와 누나는 오죽하면 아파트 지하공간 같은 공간을 전전하다가 소란이 마무리될 즈음에 집에 들어가곤 했으니까. 누나가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된 공터에서 맨홀 하나를 찾아낸 것도 집안의 악인 때문이었다. 남매는 파다 만 맨홀을 은신처로 삼았다.

성장하면서 누나는 연극을 하겠노라 집을 나간 누나가 돌아온 건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였다. 모두의 의인이자 누군가의 악인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상흔은 남았다.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는 '나'의 가슴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만들었다. 그 구멍은 '나'를 빨아들였고, 나는 어둠으로 잠식되어 갔다.


…그러면 인간은 아예 구멍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 아닐까요?


2. 끓어오르는 분노

'나'는 엄마와 누나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자신과 다르게 엄마와 누나는 장례식장에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 나라에서 마련해 준 추도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맞고도 다음 날 아버지의 밥상을 차려주던 엄마는 그렇다치더라도, 자신의 맨홀 동지였던 누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집을 나갔다 온 사이에 왜 저렇게 바뀌었을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감사패를 없애버리겠다는 '나'의 말에도 죽은 사람은 용서하자는 두 사람의 태도가 '나'의 입장에선 너무나 같잖고 열받는다.

나는 그 감정을 여러 곳에서 찾아본다. 1/n로 견뎌오던 아버지의 폭력을 방치하고 떠났던 누나에 대한 원망감, 믿었던 누나마저 떠나면 기댈 곳이 없다는 절박함, 아이들을 지키긴커녕 폭력을 방치하고 저항하지 않은 엄마의 한심함, 그러면서도 의인의 아들로 은근한 주목을 받는 동정 어린 시선에 대한 열받음까지. 모든 게 짜증 나기만 한다.

그런 '나'가 하천에서 놀던 기진이들 무리에 껴서 방황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백 퍼센트 마음을 열지는 못한다. 그저 어느 날부터 동네에 많아진 외국인 노동자 파키들이 짜증 나고, 그들이 벌였다는 나쁜 일들이 열받게 하고, 또 이 지긋지긋한 삶이 분노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분노에만 몰입하진 못한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또 적당히, 자신의 위치를 찾아간다.


3. 겉도는 존재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기진이들과 놀고, 여자친구 희주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누나처럼 가족을 박차고 나가버렸다면 나았을까? '나'는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겉돈다. 게다가 마음과는 다르게 누나에게도 괜히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다가 인생 최악의 말 '너 그 사람(아버지) 닮았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을 의탁하려면 의탁할 수 있는 친구들, 가족이 있음에도 그는 끊임없이 겉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던 맨홀마저도 아버지의 감사패를 갖다 버린 후에는 마치 심연이라도 되는 듯 갈 수가 없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그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 존재의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심연의 상태. '나'는 스스로가 구멍이 되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내가 의탁할 곳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다. 그에겐 어린 시절부터 '보호받아 본 경험'이 없고, 가족을 비롯해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한 채 성장했으며, 의인과 악인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추악한 그림자에 환멸을 느끼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내미는 손도, 따뜻한 환대도 받지 못하는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자신이 만든 지옥이라는 걸 깨닫기는 한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긴 하지만.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일면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신이 나면 오히려 금방 우울하고 슬퍼졌다.


4. 죽이고 싶은 마음

그는 친구들과 자주 모이는 아지트, 하천의 소파에서 파키 다섯 명과 시비를 붙는다. 5:2로 붙은 몸싸움에서 집단 린치를 당한 그는 마음속에 분노를 품는다. 아니, 분노의 넘어 살의를 품는다. 그런 마음을 품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기진이와 친구들은 파키에게 복수하겠노라 몇 날 며칠 온 동네를 돌지만 결국 허탕을 친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기진이와 친구들이 자신을 안 좋게 볼 거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희주에게도 잠수를 타버린다. 치킨집 배달 알바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여름을 보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친구들은 외려 그를 반겨준다. 어떤 판단이나 목적 없이도 말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여전히 백 퍼센트 받아들이진 못하지만, 자신의 오해에서 시작된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하지만, 일이 터지고 만다. 자신은 어쩌면 용서했다고 믿은 파키를, 친구들이 하천에 잡아 놓고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라고 권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포가 될 테니 여기까지만 이야기는 마친다.


5. 당신 안의 어둠을 마주하라

작가의 말에서 故박지리 작가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맨홀을 보고는,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에서 그는 심연을 보고 있던 셈이다. 근데 그 심연이 낯설거나 생경하지 않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은 품었을 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점의 감정들. 불안정하고 겉돌고 괴로운 시간들을 작가는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작중 인물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방식보다는, 꾸준히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들며 짙은 불쾌감을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 '내 얘기 같았어.'가 아니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 혐오하고 미워하고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을 작중의 '나'를 경유해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짙은 잔여감을 남긴다. 그렇게 인물에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를 버려두고 싶지는 않는 이상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멘헤라, 진짜/가짜 광기 같은 용어로 이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지옥, 어둠, 끝도 없는 터널 같은 워딩들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만큼 짙고, 깊이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지독한 자기혐오 빠져본 적이 있거나, 인간에게 환멸 나는 감정이 있다면 혹은 그 반대로 이런 감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 안에 숨어 있는 어둠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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