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한국문학
이 책은 2025 SF어워드 수상 소식을 듣고 읽게 되었다. 이전까지 서윤빈 작가의 작품은 등단작 〈루나〉의 해녀 이야기만 읽었고, 배경 정보는 거의 전무했으니 안 본 눈(?)에 가까운 감상이렸다. 글쎄, 이 책에 대한 단상을 먼저 말하자면 '디테일하다'이다. 뇌에 버디를 장착하고, 인공 장기 임플란트로 목숨을 연명하는 근미래의 과학적 상상력에 누진세, 구독 연장 등이 붙으며 벌어지는 사회의 모습과 다양한 군상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특히 이런 '가정의 세계'들은 '만약 ~한 상황은 어떻게 할 건데요?' '이런 경우는 고려 안 하나요?'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웬만큼 탄탄하게 세계관을 잡아놓고, 독자들에게 설명되지 않는다면 갑갑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세계관 설명만 하다가 끝나는 이야기도 여럿 봤다.)
그런데 이 책은 직조한 세계가 2024~2025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중 시기상으로는 먼미래 같아보이지만, (아마도 평행우주의 한 모습처럼) 요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른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그 점이 편안하기도 했고, 잘 읽히는 요소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버디'가 도입되며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 인공장기로 사람들의 나이에 대한 관념이나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생각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본주의는 어떻게 이러한 현상에 묻어나는지 등 꼼꼼하게 빈틈을 메우는 작가의 성실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을 읽게 만들었다.
국가 주도의 건강검진, 인공장기 구독 서비스(누진 단계 판정 등)가 등장하면서 이론적으로 사람들은 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이제 돈을 낸다면 말이다. 오래 쓰거나 막 쓴 장기에는 누진세가 붙고, 3단계 심장만 하더라도 월에 10억대 구독료를 내야만 한다. 4단계인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함께할 사람을 찾아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주인공 유온은 가애다. 죽음을 앞두고 사랑(혹은 사람)을 찾는 이들(수애)을 찾아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그들의 유산을 받아 자신의 명을 연장하는 일종의 제비(?)인 셈이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질서가 뉴노멀로 자리잡 듯 가애라는 직업도 인정받을만 한데, 한 대화 내용을 보면 떳떳치 못한 직업이라는 묘사가 나오는 걸 보니 사회 인식이란 쉽게 변하진 않는 모양이다.
유온도 사실 살기 위해 이 직업을 택했고, 2단계 심장 누진 등급을 유지하면서 여러 명의 수애를 갈아타며(?) 살아왔다. 그에게 사랑은 도구이고, 시간은 생존의 목적 그자체다. 의미를 위해 살기 보다는 살기 위해 의미를 만드는 쪽에 가깝다.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시대의 사람들은 필멸자의 시절보다 더욱 집착적이다. 목적이나 의미보다는 '죽고 싶지 않다'는 착이 작품 속 인물들 사이에 짙게 깔려있다.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 그런 아이러니에 빠진다. 어쩌면 화자인 유온이 가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는 몸 안에 새겨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노화란 세금과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몰랐다.
인공 임플란트가 설정의 한 축이라면 뇌와 연동하는 일종의 인공 두뇌? 버디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와 연동되어 상대방의 표정 분석, 스케쥴링, 식단 관리 등 AI비서처럼 작동하는 버디의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버디를 착용해 두뇌를 풀가동(?) 하며 살아가는게 디폴트가 된 사회에서, 버디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나 버디가 부작용이 나서 기억을 잃어버리는 성아 같은 캐릭터들은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동시에 소외되는 사람들을 만든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없던 결함이 생기며 부적합, 부적격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단지 장기 구독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태되는 이 설정은 어쩌면 대 AI 시대 앞에선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버디가 의무화되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아마 우리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선한 거짓말, 핑계와 미루기, 비효율적인 행동, 그 외 최적화되지 못한 모든 것들을. 기술은 인류의 능력의 효과와 효율을 비약적으로 올려놓지만, 인간이기에 벌이는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제거할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과 비합리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창의성이 나온다고 믿는(?) 나같은 치들은 도태당하기 딱이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남들이 다 하면 이식하지 않을까...?
기억을 완전히 잃는 건 아니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마치 책에서 한두 페이지를 찢어놓은 것처럼 기억이 한 군데씩 드문드문 끊길 뿐이었다. 그렇게 기억이 끊기면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그 공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성아의 상상은 늘 현실보다 나빴다.
책의 뒷 부분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감각이 하나 있다면, 바로 권태감이다. 수애 한 명을 보내주고,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던 유온은 보육원에서 만난 가애(로 추정) 성아를 만나는데, 그 사이에 껴있는 에피소드들(아내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거나, 성아와 데이트를 한다거나)이 생각보다 권태롭게 읽힌다. 100살 넘게 볼 꼴, 못 볼 꼴, 좋은 경험, 슬픈 경험, 산전수전 다겪은 노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 세상은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가애가 비단 살기 위해 사랑을 하고, 계산된 행동을 하면서 매일을 버틴다지만 생존이 목적이 된 세상의 일상 표현은 굉장히 권태로웠다. 그러나 죽음 앞에는 죽고 싶지 않아하는, 이 아이러니는 묘했다. 사람은 의미와 행복이 먼저인가 생존이 먼저인가. 장수하고 백년 넘게 산다고 하더라도 지루한 권태감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생존을 제외한 모든 인간성을 제거해야만 하는가. 여러모로 고민이 들더라.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설정과 재미로 시작해서 인간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당신은 어떤 목적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