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한국문학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오며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 출판계의 밝은 모습이로구나.' '미래가 밝구나!'라거나, '아름다운 출판계의 빛과 소금들이다!'라는 긍정 평가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앞섰다. 밝게 포장된 이면에 애정하는 마음으로 발을 들였다가 사라져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도서전에서 감겨(?) 출판계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방황 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부정으로 가득한 내 마음에 다시금 출판뽕(?)이 한가득 주입되면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오직 그녀의 것》은 주인공 홍석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한 명의 편집자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다만 편집자의 성장 일기하면 떠오르는 텐션이 높은 서사들, 이를테면 쿠로키 하루의 〈중쇄를 찍자〉나 이시하라 사토미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와는 정반대의 결을 갖고 있다. 《스토너》의 그것처럼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격동적인(?) 한 사람의 30~40여년을 핍진하게 담아낸다.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 되고 있었다.
홍석주는 사학과를 졸업해 교직 대신 출판계를 선택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글을 쓰고 다루는 업으로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교한서가라는 출판사에 교열자로 입사해 교정·교열을 맡아 일한다. 정확한 정보를 찾아 대조하고, 책의 오류를 잡아내는 그 업에 석주는 최선을 다한다. 엄한 사수의 지도아래 스스로 원고를 필사해 집에서 교열을 연습하는 등의 열의를 보이며 일에 빠져든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편집부의 빈 자리로 추천되어 자리를 옮기게 된다.
편집일은 교열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작가를 대면하고, 기획을 하고, 책의 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만들어가는 역할이었다. 장민재라는 새로운 사수 아래에서 석주는 차근차근 편집이란 무엇인지,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하나씩 배워간다. 비슷한 연차의 편집자 모임에 나가 스터디를 하기도 하면서 평소라면 내지 못했을 용기를 내며 자신의 업에 애정을 다한다.
석주가 성장해 가는 여정을 보면서, 나도 이 업에 애정을 갖고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만든다.'는 마음으로 주말에도 전자책을 만들던 내가 보였다. 내가 석주와 달랐던 건 나의 업이 영원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과 끝까지 업을 가져갈 수 있다는 확신의 차이는 아닐까 싶었다.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도 하고)
이후 구조조정에 의해 교한서가에서 나오게 된 석주는 다시 임용고시를 볼지 고민하며 잠시간 방황을 하다가 신생 출판사 산티아고북스에 입사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대리 과장 차장…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간다. 창고에서 벌어진 스티커 작업, 손해가 막심한 사건(스포 방지), 리스크가 큰 일(스포 방지) 등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가며 그는 업에 대해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내가 만난 출판사 사람들은 하나 같이 책을 좋아했다. 그 좋아함이 그저 좋아한다는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업과 이 씬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권태를 느끼고, 무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어느샌가 출판으로부터 멀어졌다. 관성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진짜들의 업이라는 생각을 일을 하는 내내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좋아하나요? 라는 질문에 이젠 쉽게 답할 수가 없다. 신입 시절에는 당당하게 "네!"라고 답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의심이 든다. 나는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가. 평생 이 업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 역시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의 인생 희망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이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잔잔한 듯 단단한 김혜진 작가의 이야기에 홀린 듯이 빨려들어갈 테다.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