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한국문학
의도한 건 아니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들이 무거운 내용을 다루는 게 많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책을 디깅하다가 이 책을 만났다.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토끼 무당(?)과 부적, 컴퓨터와 붕어빵 타코야끼? 이 난잡하면서도 기묘한 조합은 뭘까? 종잡을 수 없는 구성에 궁금증을 품은 채 읽기 시작했고, 이 표지는 정말 모든 것을 다 보여준 표지였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디자이너 김하용이 우연히 악귀들과 엮이면서 무당 명일을 만나고, 본의 아니게 콤비가 되어 일상 곳곳에 침투한 악령들을 퇴치해가는 이야기다. 악귀, 악령이라고 해서 〈곡성〉이나 〈주온〉 같은 영화를 떠올릴 법하지만, 안심하라. 이 책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 유쾌한 악령 퇴치 드라마니까 말이다.
이 책의 묘는 이사구 작가의 글빨이라고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다. 유려하거나 아름답진 않지만 통통 튀고 개성있는 주인공 하용 캐릭터를 살리는데 이만한 문체가 없다. 엉뚱하면서도 소심하고, 능동적이면서도 주저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에게 딱 걸맞는 솔직하고 발랄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가 쭉쭉 넘어간다.
왠지 일상에서 한 두 명은 마주할 것 같은 이런 캐릭터 앞에 처한 상황들은 코믹하면서도 잔인하다. 방음이 안 되어 옆집의 애정행각 소리를 매일 들어야 하는 자취방, 갑자기 착해지다 못해 기괴해진 직장 상사, 시합을 앞두고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운동부 소녀… 웹드라마의 에피소드처럼 때론 과장으로, 때론 짠함으로, 때론 드라마스럽게 필살의 글빨을 찰떡으로 풀어낸다.
원수가 가도 뜯어말린다는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구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슬퍼하고, 울고불고. 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다시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하용이 주인공 재질의 인물이라면, 서사의 다른 한 축을 끌고가는 이는 무당 명일이다. 하용의 발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쪽 캐릭터도 만만치 않게 재밌다. 무당 언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부적을 유통할 수 있는 스마트 스토어란 스토어는 다 운영하는 세속적인 인물이다. 《혼모노》나 《파묘》처럼 무속적으로 진지하고 딮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캐쥬얼하고 유쾌한 방법으로 돌파한다. 대략 이런 식이다.
1. 악귀가 씌인 사람은 부적에 반응한다.
2. 반응하면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하며 일그러진다.
3. 그냥 두면 심장을 뽑혀먹히고, 입 안에 부적을 넣어 퇴치하면 악귀였던 이가 구슬을 뱉는다.
명료하고 단순한 플롯은 큰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악귀 발견 - 위기 - 구슬을 뽑아 퇴치'라는 구성이 마법소녀물이나 포켓몬스터에서 지우가 로켓단을 처리하는 에피소드처럼 반복된다. 물론 이런 단조로움이 서사를 평평하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하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나는 이 서사의 광명은 후속작이나 속편에서 나올 거라 생각한다. 이만큼 판을 잘 깔아놓았고, 재미도 있는 작품도 보기 힘들다.
마음 편하게 깔깔거리면서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오랜만에 읽는 재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
직장 상사가 이상하다. 누군가는 이 말을 두고 동의어 반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직장 상사는 본디 이상한 존재인 것을 또 말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럼에도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요즘 내 직장 상사는 정말로 이상하다.